일평생 동안 고집스럽게 오직 하나의 소재만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 온 화가가 있다. ‘물방울그림의 대가’로 불리는 김창렬 화백이다. 
평면 위에 빼곡히 찍어 놓은 무수한 점과 점들, 순간포착 된 영롱한 물방울의 형상에서 그는 ‘생명의 경이’라는 미의식을 발견한 것이다. 김 화백의 물방울그림을 그윽이 응시하고 있노라면, 그냥 스쳐 지나갈 법한 하찮은 물방울들로부터 특유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그의 번뜩이는 예술적 감각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 그림들에서 나는 엉뚱스럽게도 하느님의 눈을 떠올린다. 만일 정말로 하느님이 계셔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면, 이 지상의 삼라만상을 김 화백의 물방울그림 속의 물방울들처럼 여기지 않을까. 우리 사는 세상의 모든 형상 가진 존재들은, 지구라는 초대형 화폭의 그림을 이루어 내는 물방울들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가의 계율 가운데 분별심分別心을 갖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우리네 사람살이에서는 항시 이 분별심이 끼어들어 말썽을 일으킨다. 분별심은 마음이 눈을 따라가지 못해서 생기는 지체현상이다. 땅을 딛고 서서 육안으로 살피면, 크고 작음이며 높고 낮음이며 아름답고 추함이 확연히 구별된다. 이것이 분별심을 불러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 분별심이 들어서 우리를 웃고 울고 부대끼며 상처받게 만든다. 
하늘 위에서 영안靈眼으로 내려다볼 때 이러한 구별은 무의미해진다. 크거나 작거나 높거나 낮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모두가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물방울그림에서의 물방울들처럼. 분별심이 사라지면 헛된 욕망도 사그라지고, 욕망이 사그라지면 마음이 평정에 이를 수 있지 않겠는가.
우뚝 솟은 산 위에 올라서면 저절로 호연한 기상이 길러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산마루에서 바라보면 땅 위의 건물들이 성냥갑만 하다. 높다란 빌딩도, 널따란 공장도 그저 알록달록한 장난감 같다. 산마루에서 바라보면 달리는 탈것들이 느림보이다. 쏜살같은 기차도, 씽씽 나는 자동차도 마치 고물고물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 떼를 닮았다. 산마루에서 바라보면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가 벌집 모양이다. 현관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꿀벌 같다. 산마루에 올라서면 높고 낮음이며 빠르고 느림이며 아름답고 추함의 경계가 없어진다. 
어째서 하느님은 형상 가진 모든 존재자들을 향한 사랑에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아니하는가. 이 난해한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이 어렴풋이나마 찾아질 수 있을 듯하다. 
멀찍이 떨어져서 살필 때, 우리 사는 세상의 아귀다툼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찮고 부질없는 일인가를 비로소 깨달을 성도 싶다. 
고속도로 갓길에 잠시 내려서 본 적이 있는 분들은 “그래,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리라. 자동차 안에 타고 있을 때는 감지할 수 없는 그 엄청난 속력에 현기증이 일면서 오싹 소름이 끼친다. 휙휙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질주, 그것들은 숫제 달리는 차가 아니라 날아가는 총탄이다. 
저 아득한 허공을 하나의 까만 점이 돼 떠가는 비행기는 근심걱정 훌훌 내려놓고 유유히 흐르는 구름처럼 한가로워 보인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서 우리는 양털방석에 앉아 있는 듯 안정감을 느낀다. 이런 비행기를 바투 다가서서 치어다본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순식간에 눈이 멀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평정된 마음으로 대상을 응시한다는 것, 이것이 정관의 세계요 관조의 미학인 것이다. 
만일 하느님에게 눈이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칠천 피트 상공의 비행기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볼 때의 느낌과 똑같지 않을까. 그러기에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사람이 하느님의 위치에 서서 하느님의 입장이 돼 보는 것이다. 하느님의 눈을 빌려 세상을 바라다보는 것이다. 
만일 그 속에 앉아서도 주머니에 들어올 돈이나 셈하고 지위며 권세며 명예 따위에 골몰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애초 비행기를 탈 자격이 없는 위인이다. 
비행기 위에서는 크거나 작거나 높거나 낮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한 차이가 일시에 사라진다. 모두가 고만고만한 물방울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아스라이 이내가 깔리는 고향 마을의 저녁 무렵 같은 정경을 연출한다. 이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 지상의 풍경이 더없이 평화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모든 분별심이 사라진 때문이 아닐까. 허공 중천에 떠서 이런 깨달음 하나도 건지지 못한다면, 그 값비싼 항공료를 지불하고 나선 비행기 여행이 얼마나 무의미할 것인가.
살아가다 가끔씩 마음의 중심이 흔들릴 때면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일이다. 그런 여유로움으로 험난한 인생사의 파도를 헤쳐 나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