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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흥 렬 수필가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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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1  16: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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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비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이다. 빛바랜 잎사귀들 사이로 추적추적 가는 빗줄기가 듣고 뒤미처 첫눈이라도 흩날리는 시절이면, 겨울의 분위기는 하루가 다르게 성큼성큼 다가선다. 날 세운 바람이 이리저리 거리를 휘젓고 다닐 것이고, 사람들은 코트 깃으로 목 부위를 감싼 채 종종걸음을 칠 것이고, 먹이에 굶주린 산짐승들의 울음소리가 기슭을 타고 한층 구슬픈 메아리로 깊어질 것이다.
살아 있는 뭇 생명들이 제각각 자기만의 달팽이집을 짓고 스산한 겨울 채비에 분주해지는 계절,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가장 부산스러운 때가 바로 이즈음이다. 사냥꾼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 시기를 놓칠세라 총질에 한층 신이 나 할 것이다. 
그들은 전리품을 노획한 장수이기나 한 양, 하루 만에 꿩 몇 수에 토끼 몇 마리, 거기다 노루며 멧돼지까지 잡았느니 하며 자신들의 포획물捕獲物 이야기를 무용담 삼아 늘어놓길 좋아한다. 덕분에 말 못 하는 산짐승들 가운데 더러는 애꿎게 천수에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사태가 생겨난다. 어찌어찌 운 좋게 살아남기는 한다 해도 모두들 시름시름 마음의 병이 깊어 갈 것임은 분명하다.
머지않아 저 남녘으로부터 꽃소식이 전해져 오면, 겨울산은 한바탕 앓고 난 사람처럼 수척한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 것이다. 겨우내 온 산을 탕탕 휩쓸고 지나간 무자비한 총소리가, 마구잡이로 그들의 여린 가슴에 치유하기 힘든 못질을 해댄 결과이다.
세상에 사람만큼 모질고 독한 종족이 또 있던가. 짐승 세계의 약육강식은 그들의 불가피한 생존의 법칙이지 결코 유희를 위한 짓은 아니다. 그에 반해 유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낚시며 사냥이며 짐승 싸움붙이기로 내기를 거는 투전놀이, 이런 따위의 산목숨 해침 행위는 우리들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의 표출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이러한 욕망은 그 어떤 변해의 말로도 용납될 수 없을 듯하다. 그것은 장차 인간 위에 군림하는 어떤 불가해한 존재가 나타나, 이법理法의 테두리를 벗어난 가공할 폭압暴壓으로 인간 존재를 씨도 없이 말려 버린다는 상황을 가정할 때, 우리가 그걸 결코 받아들일 수 없고 또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을 그런 가당찮은 이치나 마찬가질 터이기 때문이다.
마구잡이 총질로 급기야 산자락 근처에서 밭일을 하던 생사람까지 희생되었다는 소식이 일간지의 사회면을 장식했다. 사고를 저지른 사냥꾼의 분별없는 행위가 오늘따라 우리를 한없이 우울하게 만든다. 
목숨을 잃은 당자로서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억울한 죽음이 아닌가. 지닌 것이라곤 그저 땅 파먹는 재주밖에 없는 그 순박하고 여린 사람들한테 무슨 큰 죄가 있기에…….
이처럼 무도한 짓거리를 해대는 인간들일수록 자신의 목숨에 대한 애착은 동아줄만큼이나 모질게 질기리라. 그러기에 그들은 아직 숨이 붙어 팔딱거리는 노루며 고라니며 사슴 같은 짐승의 목을 따 선지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몸보신 잘 했다며 잘도 승리의 쾌재를 부른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 가꾸기에 대한 집착은 실로 눈물겨운 데가 있다. 바퀴벌레의 습성을 닮아서인가, 그야말로 쇳조각 말고는 다 먹어치우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한다. 녹용이니 웅담이니 해구신이니 하는 따위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개구리며 뱀, 도롱뇽 알에 이르기까지 정력에만 좋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이 못 말리는 우리네 별스러운 몬도가네식 식습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공급되는 이른바 ‘보신식품’의 약 팔 내지 구 할이 한국 사람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다는 어느 통계 자료를 접하고선 화끈 얼굴이 달아오른 적이 있다. 
하필 우리만 왜 이리 유별나게 호들갑들인가. 그렇게 애지중지 공들여 가꾼 몸, 백 년을 살아도 하루살이보다 허망한 인생일 수 있는 것을……. 훗날 다음 세상에서 받게 될 한량없는 업장業障을 어이 다 감당할 수 있으리.
세상이 오늘날처럼 이리 어지럽고 혼탁한 것도, 다 그 근본을 따지고 들자면 결국 생명에 대한 외경의 마음을 깡그리 망각하고 사는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목욕한 물을 버릴 곳이 없구나, 온통 풀벌레 소리’
이렇게 노래한 일본 어느 방랑시인의 하이쿠 한 편이 생각난다. 하찮은 미물인 풀벌레들의 목숨을 다치게 할까 저어하여 허드레 목욕물조차 내키는 대로 버리지 못해 고뇌했던 시인의 마음은, 정녕 그 풀벌레만큼이나 여렸을 것이리라.
생명 가진 만상萬象의 목숨 가운데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아니한 것이 있을까. 우리 모두가 예의 이 시인 같은 마음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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