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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 흥 렬 수필가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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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26  12: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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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묶인 이삿짐을 푼다. 온갖 잡동사니 사이에서 낯익은 물건 하나가 손에 잡혔다. 해묵은 사진첩이었다. 
수십 년 세월 동안 라면상자 안에 깊이 잠들어 있다 새집을 지어 옮기는 과정에서 비로소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찬찬히 넘겨 본다. 큰아이의 유치원 재롱잔치 때 찍은 사진들이 하나 가득 담겼다. 
아내가 아이의 볼에다 입맞춤을 하는 사진에 유독 오래 눈길이 머문다. 뾰족이 내민 제 엄마의 입술이 뺨에 닿으니 아이의 얼굴에서 발그레 홍조가 피어난다. 
모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살갑고 다정스러워 보인다. 아이는 햇병아리처럼 샛노란 체육복을 입었고, 아내는 잠자리 날개 같은 연분홍 깨끼 한복 차림이다. 
여섯 살 아이의 머리에는 고깔이 얹혔고, 서른 중반의 아내는 올림머리를 하고 있다. 
아! 우리에게도 언제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마음은 어느새 서른 해 전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갑자기 주책없이 눈가에 촉촉이 이슬이 맺힌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날들의 정경이 영사기 돌아가듯 머릿속으로 주르륵 흘러간다. 빛바랜 사진에서 새록새록 기억의 조각들이 되살아난다. 
사람은 젊어서는 꿈을 먹고 살고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요즈음 들어 꿈을 꾸는 시간보다는 추억을 더듬는 시간이 많아졌다. 벌써 과거의 일들을 되새김질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생각하니 지난 세월에의 회한이 밀려온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시인이 읊은 시구가 가슴속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삶의 자국 자국들이 얼마나 옹골지고 살뜰하였을까.
가만히 눈을 감고서 젊었던 시절을 그려 본다.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온통 실수투성이였던 것 같다. 어쩌면 그리도 천방지축 지각없이 흘려버린 나날들이었는지 모르겠다. 
삶에의 깨달음이란 늘 지각생으로 온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가. 만일 세월을 되돌릴 신통력만 지녔다면 정말 제대로 된 젊은 날을 한번 가꾸어 볼 수 있으련만…….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연습이 없는 것이 인생이고 보니, 치기 어렸던 그 시절의 행실에 대한 자괴감으로 마음 자락이 헛헛하다. 
후회 없을 생이 어디 있으랴. 후회는 살아 숨 쉬는 존재라면 그 누구라고 갖게 되는 필연인 것인 것을.
언감생심 세월의 시계는 되감을 수가 없는 법이려니, 때늦은 뉘우침으로 백번 천번 되풀이 반성문을 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 이렇게 읊은 호라티우스의 시구에서 위안을 얻는다. 
이미 과거로 떠내려가 버린 날들에 발목 잡혀 연연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알뜰하고 진실되게 살아가는 것이 보다 지혜로우면서 가치 있는 여년이 되리라.
이런 생각을 하며 다시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어느새 가슴속이 촉촉이 젖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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