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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목월문학관의 사계
곽 흥 렬 수필가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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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26  21: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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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낯설던 것도 정이 붙게 만드는 요상한 힘을 지녔는가 보다. 
경주 불국사 정문과 마주보며 자리하고 있는 동리목월문학관을 드나든 지 어언간 십 년하고도 또 몇 해가 흘렀다. 그곳의 부설기관인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에 강의를 맡아 후진을 기르는 데 힘을 보태게 되면서부터이다. 지금 삶을 꾸려가고 있는 산골 마을에서 문학관까지 자그마치 삼백 오십여 리 길, 그 그리 만만치 않은 거리에도 강산이 바뀌고 남을 만한 세월 동안 한 달에 두어 차례 꼴로 꼬박꼬박 드나들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처음엔 서먹했었던 곳이 이제는 내 집같이 낯익다.
어찌어찌해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에 출강을 하게 된 것은 인연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 처음 문예창작대학이 출범할 때 함께 강의를 맡았던 다른 분들은 하나같이 경주에 살고 있거나 아니면 그 고장 출신이었다. 오직 나 혼자만이 경주와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그저 중학생 시절 수학여행 때 불국사에 간 것이 기억 속에 머무는 유일무이한 경주 나들이였고, 그 후 두서너 번 부산을 오갈 때 스쳐 지나쳤던 곳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천년고도라는 역사적 특수성에 걸맞은 그곳의 독특한 지역적 정서에 적잖이 당황스럽기 일쑤였다. 게다가 공연히 그네들끼리만 짬짜미를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스스로 외톨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런 내게 정이 붙게 만든 것은 시간의 힘이었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문학관을 출입하는 주위 분들과 차츰 면을 익히게 되고, 그분들과 하나 둘 교분을 쌓으면서 당초의 불편하고 서먹함은 시나브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사람도 사람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마음을 붙들어 준 것은 문학관 어귀에서 만나게 되는 돌다리와 돌계단 이쪽저쪽에 펼쳐진 경치였다. 석굴암을 품에 안은 토함산 기슭, 천 년의 숨결이 흐르고 있는 그 빼어난 풍광을 어쭙잖은 글 솜씨로 그려 내기에는 내 표현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궁륭형의 육중한 석교石橋를 지나 돌층계를 밟으면서 한 단 한 단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는다. 그렇게 하늘을 이고 선 빼곡한 수목의 터널을 헤치며 지나가노라면, 마치 중세의 어느 성으로 들어가는 듯 고즈넉한 기분에 젖어들곤 한다. 
사철 가운데 어느 계절도 풍광이 빠지는 때가 없다. 봄은 봄대로 아름답고 가을은 가을대로 아름답다. 여름의 녹음도, 겨울의 설경도 제각기 색다른 멋을 펼쳐낸다. 
겨우내 기승을 부리던 동장군의 기세가 꺾이고 남녘으로부터 훈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봄날이 오면, 수천 마리의 해오라기 떼가 날아든 듯 가지를 뒤덮는 새하얀 목련꽃 봉오리들이 눈이 부시게 만든다. 애석하게도 채 한 주일을 넘기지 못하는 기간이지만, 이때만큼은 뭉실뭉실 피어나는 꽃구름에 취해 넋을 빼앗길 지경이 된다. 
돌다리 좌우로 펼쳐진,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은 언제부터 존재해 왔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온갖 푸나무들로 장관을 연출한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 원시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칠팔월로 접어들면 온통 수면을 뒤덮는 수련으로 해 황홀경이 펼쳐진다. 그 둘레의, 무성할 대로 무성해진 숲은 천연의 해가리개가 돼 가마솥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내려놓게 해준다. 
나달이 흘러 서서히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문학관의 나무들은 경내를 서둘러 가을 빛깔로 붓질한다. 서리 물든 잎사귀가 이월의 꽃보다도 더 붉다고 노래한 두목杜牧의 절창을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가지가지의 색실로 수를 놓은 듯 울긋불긋한 단풍에 눈은 또 한 번 호사를 누린다.
강의가 거의 마무리되는 한 해의 끝자락은 새하얀 눈으로 겨울옷을 갈아입는다. 소설, 대설을 거치는 사이 소리 없이 함박눈이 내리면 문학관은 다음 해를 예비하면서 긴 침묵에 잠겨든다. 
문학관이 그려내는 계절의 순환을 지금껏 열 차례 이상 지켜보아 왔다. 그 흐름 속에서,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되풀이하는 대자연의 엄숙한 질서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관을 오가는 사람들이야 간단없이 갈마들 터이겠지만, 세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곳의 사계는 길이길이 자리바꿈을 영속할 것이리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 
오늘도 문학관으로 통하는 돌계단을 밟으며 이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마음속으로 가늠해 본다. 그러면서 다시는 못 볼 것인 양 찬찬히 눈사진기에다 담는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발걸음에 무게가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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