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신문
오피니언기고
끝나지 않는 타관살이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6.11  17:49:5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고향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눈을 떴다. 긴긴 타관살이를 끝내고 고향에 돌아와 살고 있으면서 고향을 찾아 헤매다니, 이 무슨 어불성설인가. 
거실로 나와 전등을 켰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다. 날이 새려면 아직 두어 시간은 더 지나야 한다. 
뒤숭숭한 정신을 맑히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정원의 꽃나무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걸음을 멈추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서산머리에 하현달이 걸려 있고 사위는 적요에 잠겼다. 간간이 짝을 부르는 고라니만이 꽤액 꽥 꽤액 꽥 돼지 멱따는 소리 같은 괴성을 지르며 정적을 깨울 뿐이다. 
봄의 끝자락이어서 아직은 새벽 찬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길게 심호흡을 하며 밤새 깨끗이 걸러진 공기를 깊숙이 들이켜 본다. 
산자락에서 전해지는 상쾌한 내음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 같다. 이 느낌이 비할 수 없이 좋다. 
도시의 복닥거림과 수선스러움에 넌더리가 나 고향으로 삶터를 옮긴 지 어언간 십 년이 가까워 온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착이 되었을 성싶건만, 아직도 걸핏하면 고향 꿈을 꾼다. 꿈속에서는 어릴 적 천둥벌거숭이가 돼 뛰놀던 논과 밭, 고샅길이며 학교 운동장 들이 또렷이 나타난다. 
이런 꿈을 꾸고 난 날이면 잃어버린 고향 생각에 허전함이 한층 짙어진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류시화 시인의 시를 읽은 기억이 새롭다. 오래 전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말장난도 정도껏 해야지 대체 이런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어디 있나 싶었다. 
여기서 ‘그대’란 당연히 사랑하는 대상일 터이고, 그런 대상이 곁에 있으면 그것으로 이미 그리운 마음은 해소되었을 것 아닌가. 전후 문맥상으로 따져볼 때 이치가 그러하거늘, 왜 곁에 있는데도 그립다는 건지 도무지 수긍을 할 수가 없었던 게다. 그때로부터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는 그 마음이 속속들이 이해가 돼 온다. 
나 역시도 그렇다. 예의 시에서 토로한 류 시인의 심경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고향에서 살고 있는데도 고향이 그립다. 몸은 고향에 와 있건만 마음은 여전히 타관을 떠돌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날 팍팍한 도시 생활에 지쳐 고향 생각이 간절해질 때면 자주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곤 했었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 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노랫말에서는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한 지 십여 년이라고 했지만, 내가 고향을 등지고서 전전한 도회지 생활은 삼십 년도 훌쩍 넘겼었다. 열서너 살의 푸른 꿈을 품었던 소년이 예순을 코앞에 둔 초로의 황혼 대열에 접어들었었으니 강산이 바뀌어도 세 번은 더 바뀌었을 시간이 아닌가. 그리고 낙향한 뒤 십 년, 고향의 품에 안겨 여생을 보내고 있는 요즈음도 적적한 시간이면 때 없이 입속으로 <타향살이>를 읊조리곤 하니, 스스로 되씹어 보아도 참 어쭙잖은 짓이다 싶다. 
내가 그토록 고향을 찾아 헤매는 까닭은 잃어버린 지난 것들이 목마르게 그리워서이다. 우리 곁을 떠나간 어미 소와 송아지, 외양간에서 들려오던 워낭 소리, 동무들과 시도 때도 없이 뛰어놀았던 배꼽마당, 학교 가는 길에 손을 흔들며 반겨주던 코스모스, 난로 위의 양은도시락, 빈 들판에 선 허수아비, 어머니의 새벽 도마질 소리……, 지금은 찾을 길 없는 그 수다한 영상이며 여향이 이제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필름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젖어들 때면 흘러간 시간들이 사무치도록 애틋해진다.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오랜 세월을 마음속으로 꿈꾸어 왔었다.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을 때, 부모형제들이 험한 세상 떠돌다 귀환한 탕아를 한달음에 끌어안듯 어릴 적의 정서가 온전히 남은 고향이 나를 따뜻이 맞이해 줄 줄로 알았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완전히 오산이었다. 어쩌면 애당초 갖지 말았어야 할 허황된 꿈이었는지 모르겠다.
겉모습이야 지난날의 풍경과 그다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니다. 산과 들, 시내며 언덕은 아직도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세태며 인정 같은 무형의 가치들은 무섭게 변해 버렸다. 
“고향에 찾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옛 유행가 한 소절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래서 눈에 익은 고향이 자꾸 낯설기만 하다. 
오랜 도회지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고향으로 돌아온 지 어언간 강산이 바뀔 만한 세월이 돼 가는데도 나의 타관살이는 여전히 끝나지 않고 현재진행형이다. 그 언제쯤이면 이 같은 상실감에서 벗어나 그의 포근한 품에 안길 날이 오려나. 
오늘도 나는 고향의 잠자리에 누워,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고향 꿈을 꾸며 마음속의 고향을 찾아 나선다.

< 저작권자 © 고령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기사
1
이남철 군수 이제는 군정 속으로!
2
‘청년들 다 떠난다’
3
‘고령 물놀이장 문전성시’ 본격 휴가철로 접어들면서 관내 물놀이장에 많은 피서객이 몰려 인기몰이 중
4
한전엠씨에스㈜고령지점 이웃돕기 사랑의 성금
5
캠핑 이용자, 화재사고 급증 ‘주의요구’
신문사소개윤리강령편집규약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시장4길 6 (우)40137  |  대표전화 : 054)955-9111  |  팩스 : 054)955-9112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경북 다 1008  |  발행인 : 김명숙  |  편집인 : 김명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명숙
Copyright 2011 고령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oo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