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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장모님
김 태 호 수필가 / (전)고령교육장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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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04  10: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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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장모님이 금년 아흔 일곱을 끝으로 승천하셨다. 십 오년 전 먼저 떠난 장인어른 곁으로 가셨다. 서울에서 새벽 다섯 시 반에 출발한 운구차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아래 고속도로를 달린다. 음력 윤사월 초엿새 날이다.
우리 가족을 태운 초대형 리무진 영구차는 괴산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가 화장터인 상주 승천원을 향해 쏜살같이 달린다. 도로주변과 밭둑에는 노오란 금계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우리들을 향해 손짓하는 듯하다. 드디어 상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구불구불한 병성천 농로 길을 한참 달려 승천원에 도착한 시각은 아홉시 십분 전이었다. 10시에 예약이 돼 있어 소정의 절차를 밟고 제1화장로에 관을 인계한 후 1시간가량 영상으로 지켜보며 좋은 곳으로 승천하길 기도했다. 얼마 후 하얀 유골을 확인하고 분쇄기에 갈아 함에 넣고 고향 장지로 향했다.
승천원을 떠나 30분 쯤 지나 장지에 도착했다. 장지에는 벌써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조문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상객을 받고 하관 시간에 맞추어 유골을 이미 준비해둔 장인어른의 유골과 함께 합장했다. 유골위에 하얀 국화꽃을 뿌리고 잔디를 꼭꼭 밟아 주면서 저승에서도 두 분의 금슬이 이어지도록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또 빌었다.
우리 장모님은 일제 강점기 시절, 경북 선산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서 처녀 시절을 보냈다. 거기서 장인어른을 만나 결혼하고 귀국해 8남매의 맏종부가 돼 평생을 장인어른과 살았으며, 해마다 열 두 번의 봉제사를 모시고 시집 온 후로 손에 물마를 날이 없이 고생하며 시집살이를 한 어른이셨다.
그런 장모님은 사십대 중반부터 중풍을 앓고 계시는 시모님을 12년 간 모셨고, 8남매 시동생들의 뒷바라지까지 하느라 허리가 새우등 같이 굽었으며, 한 평생을 희생한 분으로 효부 상까지 받은 분이셨다.
오죽 시집살이를 했으면 딸 둘은 맏집으로 시집 안 보낼 것을 신조로 삼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두 딸 모두 남의 맏이로 출가를 시킨 것은, 운명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자랐기 때문에 불의를 모르고 정직과 청렴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또한 그 밑에서 자란 우리 집사람도 그러한 장모님의 성정을 닮아 지금도 성격이나 생활방식이 붕어빵이 됐다. 나는 요즘 가끔씩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집사람이 장모님을 쏙 빼 닮아 그 전처를 밟고 있는 것 같아 빙그레 웃어보며, 현재진행형의 아내가 그렇게 고맙고, 대견스러우며 참으로 자랑스럽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35년 전 시골에서 살다가 시내로 이사 온지 15년 만에 장인어른을 떠나보내고, 20년 간 아파트에 혼자 살면서 경로당 종신회장을 맡아 노인들과 함께 해 오다가, 금년 2월 ‘코로나 19’로 인해 경로당이 폐쇄되면서 고독과 우울증으로 생활의 리듬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제까지는 경로당에서 여러 벗들과 공동식사를 하며 소통하다가 갑자기 혼자 방안에 있으니 식사조차도 거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주말마다 서울에 처남이 내려와 돌봐주면서 시청에 자원봉사자를 쓰자고 해도 극구 반대해 혼자 있겠다고 하신 당신이셨다.
우리 가족들은 보다 못해 지난 2월말에 처남이 살고 있는 서울로 옮겨 2달가량 잘 적응했으나, 20일 전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물 만드시다가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정신이 있을 때도 요양원이나 병원에 모시려 해도 거절하고 이 세상을 단념한 듯 곡기를 스스로 끊으셨다고 한다. 평소에도 “내가 너무 오래 살아 자식들 고생시킨다.”며 누누이 말씀하시던 장모님은 아무 병 없이 노환으로 세상을 하직하셨다. 만약에 코로나 파동만 없었더라도 백세까지 사셨을 텐데, 시대가 가져다준 코로나에 운명을 당하신 것 같아 애석하기 그지없다.
조문 온 문상객들도 모두가 국상이라며 위로를 했지만, 이별의 아쉬움은 허허롭기만 했다. 당신이 평소, 남을 위해 베풀고 덕을 많이 쌓은 탓인지, 코로나의 위험 속에도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고인의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의 일생은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지만, 우리 장모님은 한 평생 우리 가족과 남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셨다.
그렇지 않아도 좀 더 편안히 사셨을 터인데 ‘코로나 19’ 라는 못된 유행병 때문에 하늘나라로 훌쩍 떠나신 우리 장모님! 부디 좋은 곳에서 장인어른을 다시 만나 백년해로 하시고, 부귀영화를 누리시길 빕니다.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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