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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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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14  12: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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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늙어간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크나큰 축복이다. 세상에는 불치의 병으로거나 이런저런 사고事故로, 아니면 양심을 지키고 정의를 부르짖다 한번 늙어 보지도 못하고 요절한 안타까운 사연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인생들에 비한다면, 이 좋은 세상 남보다 오래 오래 머물 수 있음이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늙음은 황혼처럼 아름다움이며 고목古木 같은 의연함이다. 누구는 그 겉모습으로 해서 늙음을 추함이라 할지 모르지만, 사람의 가치를 어디 겉모습만으로 따질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마음의 안뜰은 그 오랜 연륜으로 정갈하게 가꾸어져 깊고 그윽하고 향기로울 수 있다.
사람은 젊었든 늙었든 삶의 여정에서 뜻하지 않게, 혹은 어쩔 도리 없이 혼자가 되는 수가 있다. 젊어서 혼자됨은 아픔이지만 늙어서 혼자됨은 외로움이다. 사람들은 그런 아픔이며 외로움으로 해서 힘에 부쳐 몸부림친다. 그 몸부림은 그들에게 곧잘 새로운 짝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하기도 하고, 그들을 이전보다 더 의연히 홀로 서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주변에서 서른 청춘에 홀로 된 사람과도 사귀어 보았고, 칠팔 십 황혼에 상처喪妻한 사람들도 심심찮게 만났다. 그리고 보았다, 그들의 세상 살아감의 방식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서로 달랐음을. 그러면서 어떨 때는 놀라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안타깝게도 여기며, 또 어떨 때는 서글퍼지기조차 했다.
젊어 홀로 된 사내가 아들자식 하나를 품고서, 비명에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며 꿋꿋이 헤쳐 나가는 삶도 보았고, 늙어 상처한 사람이 새장가 들어 헤벌쭉하게 벙글거리고 있는 모습도 보았다. 그럴 때 아내를 잃은 젊은이의 삶은 숙연하도록 아름답게 여겨지고, 늙은 홀아비-아니 이젠 더 이상 홀아비가 아니지만-의 삶은 땟국처럼 추하게 다가왔다. 이러한 분별심이 유독 나만의 괴팍스런 감정일까.
  부부가 함께 한세상 누리다 한날한시에 생을 마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한쪽이 먼저 가고 나머지 한쪽은 고스란히 그 아픔을 지켜봐야 한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절대자의 섭리이며, 이후의 삶은 남은 자의 몫이다. 그 남겨진 날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근자에 늙어 홀로 된 사람들의 황혼 재혼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매스컴은 떠들어 댄다. 외로움을 함께 나눌 동반자가 필요해서라는 그럴 듯한 명분을 달아준다.
나는 이런 세정世情의 이야기만 나오면 어쩐지 속이 거북살스러워 온다. 사랑한다고,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수도 없이 되뇌었던 지난날의 고백들이 한낱 허울을 뒤집어쓴 가식이었던가, 반향 없는 허공의 메아리였던가. 진정 사랑했었다면 그 외로움 같은 게 무슨 문제가 될 일인가. 외로움 따위는 사랑의 무게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수십 년 전, 어느 시인은 자신의 죽은 아내를 향한 절절한 사랑과 애끓는 그리움을 『접시꽃 당신』이란 시집에 담아 세상에 풀어놓았었다. 그 얼마 후 나는 그가 새로운 여인을 만나 가정을 꾸렸음을 알고 치미는 환멸감에 역겨워했었다.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유만부동이지……, 그 뻔뻔스러움이란. 입이 열 개라도 어디 할 말이 있을 것인가. 아니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다 제 할 소리는 있다고 했으니, 그는 이렇게 자신을 변호辯護할는지 모른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느냐고. 사랑은 변하는 거라고. 어디까지나 자기 방어의 궁색한 변명일 따름이다. 이런 유의 사람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스스로 부끄럽다.
누구든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닐까.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함부로 뇌까린다는 것은 얼마나 실없는 짓인가.
요새는 일흔 혹은 여든 나이에 재혼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참으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모두들 축하를 보낸다고 한다. 그 축하의 말이 그네들의 진정일까, 아니면 요식적인 인사치레일까. 나는 그것이 몹시 궁금해지면서도 어쩐지 마음속의 빈정거림은 아닐까 싶어 실소失笑가 나온다. 곱게 늙어갈 일이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끔씩 눈꼴사나운 늙마의 모습을 목격할 때가 있다. 이런 늙음은 참 한없이 추해 보인다. 젊은이의 추함은 쉽사리 덮여질 수 있지만 늙은이의 추함은 두고두고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곱게 늙어감이라. 그래, 무엇이 그 곱게 늙어감이려나. 사람에 따라 생활방식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또 다른 까닭에 그 대답이 한결같지는 아니하리라. 고고한 학처럼 살 것인가, 수다스런 까마귀처럼 살 것인가는 결국 자신의 선택의 문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존경이며 체면은 후자 쪽과는 원래 인연이 멀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자식들로부터 존경받고 사회적인 체면을 잃지 않는 그런 노경老境이기 위해서 어찌해야 할 것인가의 답은 이로써 분명해지리라.
존경은 어디서 저절로 굴러오는 것이 아니며, 체면은 남이 세워주는 것이 아니다. 존경이며 체면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오는 정직한 결과이다. 그건 연륜年輪도 마찬가지일 게다. 부단한 자기 응시와 서리 같은 몸가짐에서 도타워진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누구든 언젠가 인생의 종착역에 당도했을 때, 어떻게 산 삶이 보다 값진 여정이었을까를 나날이 고뇌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곱게 늙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 먹어 어른이 되기보다는 정녕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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