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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을날
곽 흥 렬 수필가 / 동리목월문예 창작대학 교수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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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2  11: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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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두 다리를 자꾸만 토닥인다. 어림잡아 천 개도 훨씬 넘는 가파른 돌계단이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게 만든다. 헉헉 가쁘게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되풀이하는 들숨과 날숨의 팽팽한 밀고 당김, 그 호흡지간에서 가슴 그득 차오르는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져 온다. 이것이 내 이 순간의 살아 있음을 확연히 증거證據하는 표적인 까닭이다.
지금 나는, 이마에 송알송알 맺히는 땀방울을 연신 훔쳐 가며 갓바위를 향해 나 있는 팔공산 동남쪽 기슭의 산길을 오르는 중이다. 그러니까 몇 년 만인가, 이 길을 따라 갓바위를 찾았던 기억이 저 멀리 산등성이처럼 아득하다. 발밑에 사각거리며 부서지는 가랑잎 소리가 웬일인지 오늘따라 더욱 의미 깊게 들린다. 지난날 내 발에 밟히며 사라져 간 묵은 낙엽들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에서 무엇이 돼 있을까. 나뭇잎이 자신을 태어나게 한 몸체로부터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떨어져 나가듯, 우리들 인간도 시절인연 따라 세상이란 나그네 집에 잠시 와서 머물다, 그 인연 다하면 사랑하던 부모 형제며 처자며 친지며 벗, 함께했던 모든 인연의 끈에서 풀려나 훌훌 떠나야 하는 것을.
오늘의 순례자들 가운데 명년 이맘때쯤이면 얼마만큼이나 이 자리에 다시 설 수 있을는지……. 더러는 소슬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스러지고 말 안타까운 사연도 생겨나리라. 어느 수필가는 새색시가 김장 서른 번만 담그면 늙고 마는 것이 인생이라며 가는 세월을 애석해 했지만, 나 또한 해마다 갓바위를 찾는다 해도 몇 번이나 더 여기 단풍 깊은 비탈길을 올라 약사여래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노라면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선 것처럼 마음이 아뜩해지곤 한다.
까마득한 저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량없는 나날들을 얼마나 많은 중생들이 나처럼 이 팍팍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 갓바위 부처님 앞에 무릎 꿇었으며, 앞으로 또 얼마의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간절한 서원誓願 세우게 될 것인가. 부처님은 억겁의 세월을 그 모습 그대로 의연히 자리하고 계실 터이지만, 부처님을 찾는 발길은 해를 거듭하며 언제까지나 바뀌고 또 바뀌어 가리라.

해마다 해마다 꽃은 서로 같은데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서로 같지 않구나.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이렇게 탄식했던 옛 글귀가 다시 생각난다.
세월은 어느 한시도 멈춤이 없이 줄기차게 변해, 내일의 나는 벌써 오늘의 나가 아닐 것이며, 오늘의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내일 또 그대로 나의 자리일 수가 없다. 이것이 시간이라는 무형의 존재자가 주재하는 절대의 이법이다. 간단없는 세월의 흐름 가운데서 내 이 순간을 살아, 어느 단풍 깊은 가을날 약사여래부처님을 염송念誦했던 사연을 먼 훗날 누가 있어 증명해 줄 것인가.
불가에서는, 세상에 모습 갖추고 생겨난 개체이면 그 어느 것이든 자신이 곧 우주 아닌 존재가 없다고 설한다. 꽃도, 풀도, 나무도, 사람도 제각기 세상의 중심에 서서 자기만의 빛깔로 삶을 수놓으며 우주를 그려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안의 우주’라 일컫는가 보다. 내가 있기에 비로소 세상은 빛을 발하며, 나로 해 사물들은 의미를 가진다. 내가 있음으로 해서 해가 솟고 달이 뜨고 별이 빛나며, 내가 있음으로 해서 닭이 울고 개가 짖고 새들이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에 나란 존재가 없다면 삼라만상이 무슨 의미를 지닐 것인가. 내가 사라지는 순간 저 하늘의 해도, 달도, 별도 나를 따라서 결국 그 빛을 잃고 말리라.
나라고 하는 개체가 이 세상에 하나의 가녀린 생명체로 생겨났음은 참으로 기적이다. 실개천 둔치의 들국화 피고 짐이며 보리밭의 종달새 울음이며 놀이터 아이들의 재깔거림, 이런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음이 얼마나 큰 행운이며 가없는 기쁨인가. 그러기에 어느 순간의 필연적인 사라짐도 또한 꿈결같이 애석하리라.
명줄이 우리를 붙들고 있는 이상 이 문제는 누구 없이 지니게 되는 본원적인 아픔이다. 이 서늘한 실존에의 깨달음, 이것은 우리가 이승의 끈을 놓는 그 순간까지 쉼 없이 따라다니며 우리에게 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선사한다. 무릇 사람의 삶 가운데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아니함이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해도 좋으리라.
이러한 현상들의 의미를 생각할 적마다 한편으론 기쁨도 되고 한편으론 비애도 돼 허허한 가슴을 무겁게 적셔 온다.
줄기차게 흘러가는 세월의 어느 시점에서, 이승의 한 부분을 잠시 차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뭇 생명은 모두가 어김없는 축복이다. 한 목숨 한 목숨이 제각기 자기 나름의 세계를 살아 세상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 나 또한 그 한량없는 생명체들 가운데 좁쌀 같은 미물微物이 아닌가. 하지만 그 좁쌀은 이 세상천지에 유일무이한 개체이므로 더없이 소중하고 또 가치로운 존재일 터이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설했던 석가세존의 사자후獅子吼도, 곧 생명 가진 만상의 존귀함에 대한 뜨거운 가르침이리라. 내 이승에 머무는 하루하루의 삶의 의미가 정녕 이렇게 자리매김 되었으면 싶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히는 소리가 저 옛적 사람들의 도란거리는 이야기 소리인 양 환청으로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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