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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호 수필가 / (전)고령교육장  |  webmaster@goryeo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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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5  10: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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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계절은 거짓말을 못하는 가 보다. 며칠 전만해도 푹푹 찌는 열대야에 밤잠을 설쳐야 했던 기억이 깡그리 사라지고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이 살갗을 스친다. 올해처럼 더웠던 해가 또 있었을까? 신문지상에는 한 달 이상 폭염이 지속된 것은 사십 몇 년 만에 처음이란다. 지구촌 적도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온대지방에 사는 사람에 비하면 정말로 사는 것이 아니리라. 우리 인간도 온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지능지수가 높고 훌륭한 학자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제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니 살맛나는 세상에 사는 것 같다.

II. 결실의 계절이다. 오랜만에 아내와 시내를 벗어나 야외 나들이를 나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 황금빛 들녘엔 유난히도 햇살을 많이 받은 탓일까 누런 벼이삭이 일렁거린다. 농부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구슬같이 맺히고, 오곡백과가 영그는 가을이다. 참새들의 입질이 사나운 수수이삭은 토실토실 영글어가고 있다.
산모롱이를 돌아 밤나무 단지에는 올 익은 알밤송이가 입을 벌렸다. 가을빛은 무슨 색일까. 황금빛 울긋불긋 총 천연색, 단풍든 계곡은 빨갛다 못해 진한 녹색으로 다시 물들었다. 단풍의 색깔은 빨강 노랑뿐이 아니다. 본래 잎의 색깔로 물든 파란 단풍이 더 곱다. 단풍 중에 아름다운 단풍은 감단풍이리라. 너무 붉지도 않고, 푸르지도 않으며 은근히 볼그스름하게 물든 감단 풍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언제나 물들고 있다. 가을 햇살이 단풍잎 사이로 화사하게 내려앉는다. 가을이 점점 무르익어가고 있다.

III. 퇴직해서 도시를 떠나 농촌생활에 재미를 들인 친구 집을 찾았다. 마침 텃밭에서 빨간 고추를 따고 있었다. 우리 부부를 반가이 맞이하는 구릿빛 얼굴모습이 진심이었다. 어서 오라면서 손수 가꾼 고구마와 채소를 한 소쿠리 가지고 나온다. 가을 햇살에 알알이 영근 복숭아, 포도가 소담스럽게 보인다. 퇴직하면 그렇게 꿈꿔왔던 전원생활이 아니던가. 마당엔 빠알간 고추가 광채를 더한다. 과수원에는 사과와 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온 여름 뙤약볕에 영글어온 결실이다. 배불리 얻어먹고 한 보따리 싸주는 인심이 아름다웠다.

IV. 십 수 년 전 이었을 것이다. 청송 어느 벽지학교에 출장 갔을 때의 생생한 기억은 언제나 뇌리 속에 박혀있다. 아홉 구비 산등성이 길을 차로 넘는데 한 노부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가파른 비탈 밭을 부인은 소가되고 남편은 쟁기질을 하는 것을 보니 소를 사용하기엔 불가능한 곳이었다. 앞에서 끄는 아낙은 물론이고 남편 또한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고구마로 간식을 먹고 있을 때 하도 신기해 차를 세우고 물어보았다.
“어르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라고, “응 행복해!” 두 늙은 부부는 동시에 대답했다. 비록 비탈 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을망정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이 부러웠다. 이렇게 일해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뒷바라지 하는 제미로 즐겁게 사는 두 노부부가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V. 텔레비전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를 보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사십 년째 산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단다. 암 선고를 받고 산 속에 들어온 것이 지금은 완전히 치유해서 건강하게 살고 있었다. 도시에서 꿈을 펼치기 위해 온갖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참아온 것이 병이돼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판정을 받고 입산한 것이란다. 전깃불도 없는 움막집에서 산짐승과 같이 살아온 그이에겐 자연은 인간을 치료하는 의사보다 더 나은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됐다니 믿기지 않았다. 산속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초근목피하면서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삶이 곧 보약보다 더 낫다는 것이다. 요즘 웰빙이니, 힐링캠프니, 웰다잉이란 용어가 많이 떠돈다. 남과 경쟁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진실한 삶이 아닐까?
옛말에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어도,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 하도다’라고,

VI. 사람이 행복하게 산다는 게 무엇일까? 돈일까. 명예일까. 자식 잘되는 걸까? 돈도 명예도 자식도 다 행복의 수단이지 행복의 조건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 자연도 계절에 따라 순응하고 , 농촌에서 텃밭을 가꾸며, 적지만 많은 것 같이 살아가는 친구의 얼굴에도, 비탈 밭을 우마와 같이 일구고 사는 노파의 삶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에서 자연과 같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참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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