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새봄이 열렸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간절히 기다리고라도 있었다는 듯 정원의 꽃나무들이 겨우내 꽁꽁 여몄던 가슴을 풀어헤치고 다투어 자태를 뽐낸다. 개나리는 샛노란 꽃을, 목련은 새하얀 꽃을, 진달래는 연분홍 꽃을 저마다 피워 내어 찬연한 색채의 향연을 펼친다. 봄이 차려내는 무지갯빛 꽃잔치를 눈으로 실컷 요기하고 나니 입으로 먹지 않아도 벌써 배가 불러오는 느낌이다.
꽃들의 세상은 속임수를 모른다. 휘몰아치는 북풍한설에 마치 얼어 죽은 것 같이 잔뜩 웅크린 채 지내다가도, 우수 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지나고 청명이 가까워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나 여기 살아 있소” 하며 말갛게 씻은 얼굴로 문안 인사를 해 온다. 이렇게 각자의 근기에 따라 피어야 할 때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것이 꽃의 본성이다.
사람의 사회에는 속임수가 난무한다. 동물 사회인들 어찌 속임수야 없으랴마는, 사람 사회에 비한다면 거의 원초적인 수준일 게다. 우리 사는 세상에 단 하루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 있을까.
인간사가 복잡다단해지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해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가는 것 같다. 참말보다는 거짓말이 오히려 더 많은 시대가 됐다. 입만 뻥긋했다 하면 죄다 거짓말뿐인 사람도 심심찮게 본다.
교설여황巧舌如簧으로 타인의 환심을 사길 잘하는 이들이 출세하는 수가 다반사인 데 반해, 강의목눌剛毅木訥로 우직스럽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바보 멍청이 소리를 듣기 십상인 세상이다. 참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정치하는 이들이나 정치판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축이나 거짓말에 관한 한 어쩌면 그리도 하나같이 고단수들인지 모르겠다. 안방에서 한 말이 부엌에서 탄로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둘러대며 오리발부터 내밀고 본다. 이런 유의 위인들은 마치 거짓말을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수많은 법 가운데 무고죄와 위증죄는 거짓말을 다스리려고 만든 죄목이다. 이 같은 조문이 엄연히 마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에서 저지르는 무고나 위증으로 인해 아무 잘못도 없는 한 인생이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져 고통을 받는 일이 날이 날마다 일어난다. 이러니 겪는 당자로서는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 터질 노릇이겠는가. 경찰서며 소방서에 거짓말로 신고해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케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나중에 상황이 심각해져서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었을 때, 그들은 백이면 백 장난삼아 한 일이고 당초 악의는 없었다며 자신들의 행위를 변명하려 든다.
오늘이 4월 1일 만우절萬愚節, 이 이색적인 기념일은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일상사에서 생긴 정신적인 압박감을 가벼운 거짓말로써 풀어 주고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의미에서 유래된 풍속으로 알려져 있다. 만만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조금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만 존재할 뿐, 누구 없이 매일같이 쫓기고 허덕이며 지내는 고달픈 일상인 것이야 매일반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니, 이날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너그러이 받아들여 한때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자는 그 취지에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참말은 줄어들고 거짓말이 득세를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져 가고 있다. 이런 시대이니, 차라리 일 년 삼백육십오일 가운데 만우절 하루만이라도 참말만 해 한때나마 믿음성을 주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오늘 다시금 만우절을 보내면서 해보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