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조각 작품 <걸어가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히 연민의 마음이 든다. 어쩐지 나를 보는 것 같은 심정이 돼서이다. 엑스선 사진에서처럼 뼈대만 앙상한 몰골이, 회오리바람이라도 휙 불면 고꾸라질 듯 위태위태하다. 생전의 자코메티 몸매 역시 바짝 마른 체구였다니, 어쩌면 스스로의 자의식을 예술에 투영시키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껏 단 한 번도 살이 쪄 본 적이 없다. 그동안 살을 찌우려고 오만 짓을 다 해봤어도 끝내 허사였다. 그리해 내 몰골은 노상 사흘에 피죽도 한 그릇 못 먹은 사람처럼 빼빼마른 형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지인들로부터 “제발 살 좀 쪄라” 하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 왔다. 그럴 때마다 ‘누군 찌고 싶지 않아서 안 찌나?’ 하는 불만이 목젖까지 차오르곤 한다.
사람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리도 남의 약점에 대해 가슴에 못이 박히도록 꼭 찔러서 말을 하는 것일까. 예부터 장애자들보고 봉사니 벙어리니 귀머거리니 절름발이니 하는 표현을 아무 거리낌 없이 써 온 것이 우리 민족 아닌가. 엉덩이가 무쇠솥뚜껑만 한 고도비만자에게, 대놓고 그 뒤룩뒤룩한 군살 좀 빼라는 소리 하면 어디 듣기 좋겠는가. 제발 부탁컨대 타인의 신체에 대해서 신경 좀 꺼 주었으면 한다. 그런 데다 관심 두고 있을 시간에 자기 스스로의 처지나 한번 헤아려 보라고 정중히 충고하고 싶다.
자동차를 탈 때의 느낌이라는 뜻을 지닌 승차감에 대비되는 말로 이제는 ‘하차감’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자동차에서 내릴 때 주변 사람이 주는, 부러움에 찬 시선을 즐기고 싶다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하차감이라니 얼마나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인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이런 허접스러운 것에 휘둘리게 마련이다. 자기의 처지는 생각지 않고 그저 꼴사납게 으스대고픈 쓸개 빠진 정신 상태라니……. 이것도 일종의 남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비롯된 우리의 일그러진 풍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예부터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온 민족인 것 같다. 그래서 ‘냉수 마시고 이 쑤시기’라는 속담도 생겨났는가 보다. 저나 잘할 일이지, 제 앞가림도 옳게 하지 못하는 주제이면서도 남의 잔치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참견할 만큼 참 오지랖도 넓다 싶다. 이런 것도 하나의 문화라면 문화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