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온 지 벌써 강산이 세 번 변해
‘고령’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 뭉클

선현들의 말씀처럼 세월이 참으로 무상하다.
좀 더 큰 행정조직에서 고향의 명예를 걸고 일해 보자는 청운의 꿈을 안고서 회천을 건너 대구에 온 지도 벌써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그동안 지척에 고향을 두고서도 공직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지는 못했지만, 고향은 언제나 가슴 속 깊은 곳에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필자가 힘들고 어려울 때에 고향은 언제나 힘과 용기를 얻게 한 원천이기도 했다.
그런 고향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립고 소중하게 가슴에 와 닿고 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세월 동안 고향을 위해 미력한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좀 더 심기일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지금도 언제 어디서나 ‘고령’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향우(鄕友)들을 만날 때면 반가움에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픈 심정이 간절하다.
‘고령…’ 가야산의 정기를 받고 낙동강이 감싸고돌며 물돌이 하는 기름진 땅, 우리 선조들이 520년 동안 찬란한 대가야국의 도읍지를 이뤘던 곳, 그 정기를 안고 살아가는 4만여 주민들의 삶터, 후손들이 대대로 희망의 꿈을 펼쳐 나갈 자랑스러운 미래 터전이다.
또한 고령은 예로부터 예(禮)를 중시하고 풍류를 즐기고 멋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아울러 품질 좋은 우수한 농산품이 많이 생산되고, 인근에서 유통이 성행한 중심지여서 보부상이 발전되었던 지역이기도하다.
최근에는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에 친환경 우수 먹거리를 공급해 주는 농산물 공급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고령은 인심이 순후하기 그지없다

필자의 가문은 이런 자랑스런 고장에서 대대로 터를 잡고 살아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철부지 아이들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령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나의 고향 자랑은 “농업과 2차 산업, 대가야 문화가 잘 어우러진 도농복합지역인 고령은 소득과 문화 수준이 도시 못잖은 살기 좋은 곳으로 인심이 순후하기 그지없다”라고 요약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향 고령도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노인 인구 증가와 함께, 인구 정책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상당수 주민들의 대구 출.퇴근으로 인한 야간 공동화 현상, 산업 발달로 파생되는 환경오염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이 안고 있다. 이 때문에 필자는 최근 들어 “내 고향 고령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과 사색에 자주 빠져 들곤 한다.
우선은 고령이 가진 소중한 자원을 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깨끗한 자연환경과 인적.물적 자원, 문화유산의 소중한 가치를 군민들이 올바르게 인식하고 잘 가꾸어 나가야 한다.

특히 고령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 문화자원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는 등 새로운 조명 작업이 중요하다고 본다.
다음은 고령 고유의 지속 가능한 인프라를 발굴하고 육성해 나가는 일에 전력투구해야 할 것이다.
고령의 자원이나 인프라로는 농업, 산업,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무수히 많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차차 해 보기로 하겠다.
그 중에서도 누가 뭐라 해도 고령은 농업이 중심인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地大本)이어서 이를 빼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는 농업에 관한 간단한 제언을 사랑방 이야기처럼 편안하게 해 보고자 한다.

군민과 출향인들이 똘똘 뭉쳐 지혜를 모으자

고령은 지리적으로 산동과 산서지역으로 나뉜다. 낙동강변의 비옥한 토지를 자랑하는 산동지역은 성산면의 참외.메론, 다산면의 향부자, 개진면의 감자, 우곡면의 수박이 특화된 농산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산서지역은 쌍림면에서 시작된 딸기를 대부분의 지역에서 재배하고 토마토, 참외 등도 많이 생산하고 있으며, 특히 우수한 미질을 자랑하는 친환경 쌀인 고령 옥미를 생산해 청와대에 납품해 주목받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뛰어난 농업기술과 시설, 농업인들의 끊임없는 연구, 특화된 작목반이나 영농조직, 유통망 체계의 구축 등을 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도 우리나라 농촌의 전반적인 현실과 마찬가지로 65세 이상 인구가 23%를 넘어서는 고령화와 노동력 저하 등으로 농사일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한-미 FTA 발효 등 농축산물의 개방화로 인한 피해 또한 상당하며, 특히 축산농가들은 소.돼지 값 폭락으로 도산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한파 및 우박 등 자연재해,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 등도 넘어야 할 파고다. 이러한 난관을 한꺼번에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군민과 출향인들이 똘똘 뭉쳐 지혜를 모아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확신한다.
필자는 딸기 등 시설농업의 재배방식을 노동력 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는 농법(고설양액재배시설 등)으로 시설현대화를 과감하게 추진하고, 보관시설 및 유통망 개선, 제품 개발 등 경쟁력 제고를 위한 체계화된 영농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본다.
　고령화에 대비해서는 젊은 농업인에게 기술 및 영농자금 지원을 체계화하고, FTA 발효에 맞서 경쟁력 있는 새소득작목 개발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특히 축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축사시설 현대화와 함께 조사료 생산기반도 확충되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고려할 문제이지만 농업직불제에 버금가는 축산물 가격안정을 위한 보조제 도입이 필요한 시점인 만큼 이를 위한 혁신적 아이디어가 고령에서 우선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각종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간 1억원 이상 고소득 농가 1천호 달성은 물론 농업이 21세기 유망한 생명산업이자 미래산업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는 고령 농업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어느새 춘삼월 이다. 벌써 양지바른 논.밭 두렁에는 냉이가 파랗게 싹을 틔우고 있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지만 시간을 내서 고향 들녘으로 달려 가 봐야겠다. 그 곳에서 올 한해의 대풍을 간절히 기원해 보련다.

고령군 쌍림면 산당리 출신
경상북도지사 비서실장(현)
김천시 부시장
영덕군 부군수
가야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