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인 메리엄 웹스터는 그들 홈페이지에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는 ‘정의(justice)’”라며 ‘국가적 논쟁의 중심에 이 단어가 있었다’고 했다. 수년 전 미국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 시대의 신드롬이 된 적이 있다. 나도 지식인 흉내(?) 내느라 그 핵심 부분을 좀 읽기는 했지만 사실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논지(論旨)를 대강 적으면 ‘가격 폭리 처치법과 시장 원리’ ‘시장과 도덕’ ‘영국의 도덕 철학자 제러미 벤덤의 공리주의’ ‘정의와 공동선’ 등이었으니 내 짧은 식견으로는 알 리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당시 어느 신문 논평을 보니 “…저자는 끊임없는 의무만 제기해 놓고 정작 법의 궁극적 의념인 정의에 대해서는 정확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다만 그가 던진 명제를 보면 ‘정의’란 불변의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가변적인 ‘사회적인 합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 그래서 나는 더욱 그 ‘정의의 정의’가 미궁으로 빠지는 것이었다.
정의? 참 어렵다. 지난해 말에는 ‘공항 직원인 내가 국회의원에 갑질?’ 기사가 났다. 공항 직원이 수첩에 든 신분증을 꺼내달라고 하니(규정상 꺼내 보여야 한다고 한다) ‘이xx 책임자 데려와!’라고 소리 질렀다. 한참 전 ‘대한항공 땅콩’ 갑질 횡포를 본 이후이니 그 파장은 점점 거세었으며 성토는 끊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해당 국회의원은 ‘갑질 당한 건 나’라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놨고, 비판은 점점 뜨거워져 궁지에 몰리니 ‘음모론’을 꺼내들었다가 그게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더욱 가열찬 비판이 나오고서야 마지못한 듯  ‘죄송…’이 나오는 것이었다.
  3억 원 뇌물 받은 최규호 교육감이 도피생활 8년 만에 체포됐다. 그 신문 머리기사가 ‘황제 도피생활’이다. 그 작태는 너무 심해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골프·댄스 즐기고, 교수 사칭 여성 회원카드 빌려 쓰고, 차명 계좌로 주식거래, 동생 명의로 병원 진료와 미용 시술…. 인간이 이리도 총민(聰敏)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 천재적(?) 사술이 놀랍다고 해야 하는지 적절한 말을 찾을 길이 없다. 그 교육감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출두를 요구 받고 내일 출두하겠다고 했다가 그 다음 날 도피했으니 그게 더 교사(狡詐)스럽다. 이런 사건을 두고 ‘정의…’만 운운할 수 있어야 하는지 참 난감하다. ‘음주운전은 살인’이라고 소리를 높였던 국회의원이 만취 운전하다 적발…. 이럴 때나 쓰는 ‘내로남불’이 있다. 이 성어 때로는 심플하게 정곡을 찌르기도 하는데 이 경우엔 어쩐지 그 성어에 모욕감(?)을 주는 것 같아 좀 민망할 지경이다.
목포의 한 ‘등록문화재’를 두고 한 국회의원을 향한 연일 성토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 지역 일부는 성원을 보내기도 하지만 소속됐던 정파와 최고권부는 무반응이니 더욱 비판이 뜨겁다. 해당 국회의원은 온갖 현란한 말을 쏟아내며 다수 민의와 언론을 향해 사과하라 하고 ‘흑백 가리자’는 역공을 하고 있다. 20여 곳이 넘는 부동산을 차명으로 매입해 놓고 부동산 투기 논란이 일어나니 나중에 기부한다고 하며 비판을 오히려 성토하는 지경까지 왔다. 이게 이름만으로도 권력의 위력이 과시되는 ‘국회의원’의 행태이니 여기 편승해 끝내 자기가 옳다고 호언을 그치지 않는 그를 탓할 수밖에 없다. ‘공익을 앞세워 사익을 추구하며 정의로 포장’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회 정의? 정의 사회는 누가 구축해야 하는가. 한 나라의 인적 구성(人的構成)은 경제적, 교육적 그리고 계층적 여러 부류가 있다. 이런 여러 인적 구성에서 나라를 이끌어갈 정치적·사회적 굳건한 보루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 거기엔 보편적 시민도 있어야 하고, 이른바 지성과 건전양식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하며 그 지도자가 국가를 선도하며 발전해 가야한다. 사리가 이런 데도 그 지성인·지도자가 보통의 시정인과 똑같다면 그 사회, 그 나라가 정상국가라 하겠는가. 적어도 노블레스 오블리쥬는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럴 때 저 ‘푸른기와집’ 경제보좌관의 설화(舌禍·헬조선-해피조선)는 결정타가 돼버렸다. 내 이런 주장이 고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공항 직원에 갑질하는 국회의원, 최규호 교육감 형제, 음주 운전한 내로남불의 국회의원, 문화재 애호라며 부동산을 사들인 국회의원…. 이래서 언제 국가 지도자를 신뢰하는 사회, 정의가 바로 서는 국가가 되겠는가. 지금 어느 지방자치단체 군의회 의원들의 행태를 보자니 말문이 막힌다. 세계 10위권 경제국이면 뭘 하고 소득 3만 불이면 뭘 하겠는가. 참 공허한 현실의 허상이다.
오늘의 이 나라 정의의 교란인가, 지성의 실종인가? 잡문이나 긁적이는 내 이 3등시민이 이런 글을 쓰자니 격에 맞지도 않지만 하도 나라가 걱정스러워 적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