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흰 말 공지를 애비 하겠습니다.”
정말로 난해 하고 이해하기 힘든 안내말씀을,  온통 눈으로 변한 머리에 허리는 힘겹도록 훠어진 우리 칠남매의 어머님께서 하신,  관광 안내 말씀이시라 하면 독자(讀者) 분들은  한동안 어리둥절하시다가 웃으시느라고 정신 줄을 놓으실까 걱정이 됩니다만, 오늘은  될 수 있는 한  한글로 쓸까 합니다.
일전에 잠간 언급 한 것 처럼  3. 1절 연휴를 이용하여 어머님께 늦은 세배를 드리려 남쪽 삼남매 일가족(금강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 세 형제 가족)이 목요일이 끝나가는 시간에 대구를 출발해 인천으로 향했다.  모두가 생활전선의 고단함을 약속이나 한 듯이 코골이 향연의 멜로디로 연주함을 듣고 있으려니, 우스움보다 애조곡(哀調曲)처럼 들려 눈자위가 젖어왔다.
청운의 꿈을 안고서 인천으로 전근 갈 때는 경부 고속도로(京釜 高速道路)로 그냥 가면 무난했었는데 4-5개의 고속도로를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으면서 깜깜한 심야(深夜)에 앞서 말한 승객(일가족)들의 잠 코골이 노래를 벗 삼아 운전하자니 한층 더 조심스럽고 힘들었다. 그냥 운행해도 될 듯하지만,  요상한 지니(기계)는 과속이다, 고속감시 카메라 있다, 곡선지대다, 뭐다뭐다 하고 계속 읊조리니  편리하긴 하지만  오히려 일찍 들어오세요, 술 드시지 마세요 등으로 말하는 예쁜 새색시 출근길 인사처럼 간지럽기까지 하다.
하루 저녁에도 수회씩 잠드셨다가 깨어나시곤 하는  여든 중반의 어머님의 수면 습관 때문에,  도착하고 곧장  세배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모두 약간의 불편함이 있는 한복을 입고 견디자니 운전하는 사람이나 자는 사람이나 모두가 긴장을 했었다.
힘들게  도착을 하고보니, 어머님은 둘째 딸네가 있는  철원으로 가셨다하여, 모두가 불평(不平)을 입안에서 녹여먹으면서 서울 외곽도로를 벗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낮에 전화로 귀띔은 받았었지만 어차피 그곳(인천)에도 우리 형제가 살고 있어서 한 여행이었지만, 모두가 대구 큰형님의  말씀을 큰 함선의 방향키처럼 묵묵히 따라주는 일족들 특히 조카들이, 잘 훈련된 병사들처럼 질서를 유지함이 조잘 되면서 난해 하던 십여 년 전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 역시 세월의 힘이던가?
그사이에 누군가 어머님께 연통(連通)을 놓았었는지 예전의 습관처럼 머리 곱게 빗으시고  굽은 허리에 한복을 걸치고 앉아서 “이번에 오는 손자 놈들이 몇 놈이고?”를 수차례나 확인 하시면서 세배 돈을 챙기고 계셨단다. 아들은 사임당을, 장가간 손주는 세종임금을, 또 율곡이를 어머님 특유의 셈법으로 분배하시고는 기다림에 지친 탓인지 아니면 ‘당신의 임무(세배돈 분배지급)’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탓인지 모르겠지만 그리던 자손(子孫)들의 아침식사시간을  정말 편안히 주무시고 계셨다.          
“오늘은 내가 특별히 좋은 구경 시켜 줄게” 하시는  어머님의 배려의 말씀으로  모두가  두 대의 차량으로 분승(分乘)하여 철원(新.舊) 골짝 골짝을 구경하게 되었다.  모두가 자주 구경한 곳이라 지겨울 만도 하련만, 아들들보다 오히려 손주(孫子)들이 더욱 할머님의 기분을 맞추느라고 난생처음 구경 온 듯 재잘거림이 筆者의 가슴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서너 시간을  관광하여 어머님의 건강을 염려하는 아들들의 마음을 모르시는 지,  어머님은 또 이번에는 “인자부터 흰말 공지를 애비 하겠습니다”를 안내하신다.  이 말씀은 “지금부터 백마고지를 네비(네비게이션:안내) 하겠습니다”이신듯한데 손자들도 이 말씀에는  그간의 인내(할머님의 비위맞춤)의 한계를 넘어서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특별히 챙겨간 카라멜과 초코렛이 동나갈 무렵  어머님의 안내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하늘에 먼저 가신 아버님이 생각나신 듯  길고긴 사설시조 창(唱)을  하셔서, 우리 모두는 전사자(戰死者)  추모비(追慕碑) 앞이지만,  메아리가 올 때까지 북 바쳐 오르다가,  가슴 녹이는 무엇 한 모금을 조용히 조용히 마시면서 서 있다가 오는 행운을 얻었다.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