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을 다니던 때의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도 훨씬 더 지난 이야기다. 둘째 외삼촌이 결혼을 한 직후 월배月背 중심가에서 자그마한 식료품 가게를 열고 있었다.
지금은 상가가 즐비한 번화가로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월배는 시로 편입되기 이전이어서 자그마한 읍 소재지에 불과했다. 그 일대에는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시도 때도 없이 뭉게구름 같은 굴뚝 연기를 내뿜는 소규모의 섬유공장이 많았다. 공장의 근로자들은 아침저녁으로 저잣거리처럼 부산스럽게 가게 앞을 지나다니곤 했었다. 특히 퇴근 무렵이 되면 아가씨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버릇처럼 가게에 들렀다 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당시 외삼촌 내외는 빵과 과자 그리고 과일 따위의 먹을거리도 갖추어 놓긴 했지만, 주로 어묵이며 꼬치 같은 것을 대꼬챙이에 끼워 팔았다. 온종일 계속된 작업장의 고된 노동은, 늦은 오후가 되면 필시 시장기를 몰고 왔으리라. 그 출출한 배를 채워 줄 간단한 요깃거리로 어묵이나 꼬치만 한 것이 있었을까.
한데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희한한 일은, 손님들이 우르르 몰려와 난로 주위에 빙 둘러앉은 채 음식을 먹고 있어도 그걸 가까이서 지켜보지 않았었다는 사실이다. 웬만큼 요기를 하고 난 아가씨들이
“아줌마, 여기 얼마예요?”
물으면, 방 안이나 부엌 같은 데 있으면서 가게 쪽으로 나와 보지도 않고
“거기 장부에다 알아서 적어 놓고 가세요.”
하는, 사람 좋은 목소리로 또 오라는 인사를 대신했다. 언제나 이런 식의 어설프기 짝이 없어 보이는 손님맞이였다. 자유롭게 먹도록 내버려두고는 먹은 만큼 외상장부에 스스로 기록하게 만든 뒤 월급날 한꺼번에 계산하는 방식, 이것이 여느 가게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었다. 말하자면 철저한 신용 본위였던 셈이다.
외삼촌의 가게에는 날이 갈수록 고객들이 거품일 듯 꾀어들었다.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외삼촌이 무슨 전문경영인 수업을 받으시거나 한 적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도 장사에 관한 한 당신 나름의 신념이랄까 철학 같은 것을 갖고 계셨던가 보다.
지나치게 셈속을 따지면 사람들은 오히려 불편해 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두게 마련이다. 고객으로 해금 최대로 푸근한 느낌을 갖도록 배려한다는 것, 그 마음씀씀이 하나가 장사에서는 무엇보다 큰 밑천이 됨을 꿰고 계셨던 때문이리라.
이따금씩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이라도 할 요량으로 음식점을 찾곤 한다. 그럴 때면, 어떤 곳에서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그 값부터 먼저 지불을 요구받는 경우가 있다. 휘황찬란하게 치장을 한 집일수록 대개 그런 일이 많다. 어쩐지 야박스럽다 싶어 그 까닭을 궁금해 하면, 참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 업소가 선불 식당인 줄 모르세요?”
반문하듯 볼멘 대답 한 마디를 물총새처럼 톡 쏘아붙이고는 총총히 사라져 버린다.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여지없이 19세기 식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음식점엔 정나미가 뚝 떨어져 두 번 다시 발걸음을 하기가 꺼려진다.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지만 꼭 선불까지 받아야 할 건 뭐 있담.’ 하는 투정이 가슴속에 부글거린다. 그런 집에서는 설령 근사해 보이는 요리가 나온다 해도 입맛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벌써 체해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음식의 맛이란 그 절반이 마음 가운데 있는 것 아닌가.
옛 가르침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고 사람이 지극히 따지면 따르는 무리가 없다고 했다. 장사도 깍쟁이처럼 지나치게 잇속만 밝히면 절대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못한다. 본의 아니게 이런 집에 들어갔을 땐 공연히 좌불안석坐不安席이 된다.
느긋하게 앉아 있자니 주인의 눈치에 자꾸 신경이 쓰이고, 또 어쩐지 바가지를 쓴 것만 같은 찜찜한 생각이 앞서는 까닭이다. 약간은 어수룩해 보이는 구석도 있어야 마음이 푼푼해져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꾀는 법이다.
어찌타 장사뿐이랴. 무릇 이런저런 세상사에서 신의가 생명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