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보름 남짓 남았다. 명절을 앞두고 조상들의 묘소에 벌초를 하느라 이 산 저 산에서 예초기 소리가 메아리친다. 그 날카로운 금속성金屬聲이, 실제로야 어찌 되었건 겉보기만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조상숭배사상을 실감나게 한다.
일요일 아침, 팔순의 아버지와 단둘이서 벌초에 나섰다.
다른 집안에선 대소가끼리 우르르 몰려나와 여러 대의 예초기로 시원스럽게 벌초를 하건만, 우리 부자는 달랑 낫 두 자루 들고 굼뜬 걸음으로 벌초를 하고 있다.
구월이라고는 하나 아직도 늦여름의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가마솥 같은 열기가 훅훅 끼친다. 굵은 땀방울을 연신 훔쳐 가면서 풀베기에 힘을 쏟는데도 진척은 더디기만 하다.
근처의 가족묘로 눈길을 돌린다. 예초기 세 대가 왱왱, 왱왱, 왱왱 온산을 떠메고 갈 듯한 굉음을 내면서 신명나게 풀을 베고 있다.
칼날이 한 번 쓰윽 스치고 지나가자 그 자리에는 멀겋게 고속도로가 뚫린다. 기계의 힘을 빌리니 한 사람이 열 사람 몫을 거뜬히 해낸다. 능률적이기가 그저 그만이다. 일을 하다 말고 그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려니, 엄청 빠르고 손쉬운 방법을 놔두고 힘겹게 낫질을 하고 있는 우리가 어쩌면 미련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왜 사서 이 고생인가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등줄기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잠시 숨도 돌릴 겸 도래솔 그늘 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챙겨 온 음료수로 목을 축이며 저 멀리 아래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옹기종기 펼쳐진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낫으로 하는 방법과 예초기로 하는 방법을 두고 곰곰이 상념에 젖는다.
두 방법은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하나가 전적으로 기계의 힘에 의지하는 일인 데 반해, 다른 하나는 순전히 사람의 수작업으로 행해지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 둘을 놓고 따지면 그 사이에는 성의와 정성이라는 확연한 간극이 자리하고 있다.
예초기로 하는 벌초가 성의 표시만 하는 의례적 행위 쪽에 가깝다고 한다면, 낫으로 하는 벌초는 정성을 들이려는 숭조심의 표출이라고나 할까.
귀청을 찢는 예초기 엔진 소리가 조상님들의 편안한 잠을 방해할 것 같은, 괜히 갖지 않아도 상관없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남들은 뭐 이런 시답잖은 것에까지 신경을 쓰느냐고 비웃음을 날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쓰잘머리 없는 염려가 한 해 한 번씩 있는 연례행사에 예초기 대신 낫으로 벌초를 하고 싶은 까닭이다. 조상님들은 우리의 아날로그식 행위를 두고 참 장하고 기특하다며 칭찬을 하실는지, 아니면 어찌 그리 용렬하냐며 핀잔을 주실는지…….
세상이 변했다. 산업사회의 도래와 함께 모든 일에 간단없이 편리, 편리를 좇는 것이 보편화됐다. 숭조정신도 시대착오적인 의식으로 치부돼 하루가 다르게 퇴색해 간다.
벌초만 하더라도 그렇다. 사실 귀찮고 번거롭기로 따지자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지 않은가.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벌초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고, 또 그럴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하다 보니 훗날의 관리를 걱정한 나머지 아예 인조 잔디로 봉분을 덮어씌우는가 하면, 심지어는 시멘트로 깔끔하게 도포해 버리는 축까지 생겨나고 있다.
공자도 시속時俗을 따르라고 가르쳤다던가.
흘러가는 추세가 이러한 상황이고 보면, 참 편하고 좋은 방법을 놔두고 구태여 육신을 혹사시키는 쪽을 고집할 필요가 무에 있으려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기왕에 하는 일, 대충 성의 표시만으로 끝내기보다는 조금 고생은 되더라도 나름대로 정성을 들이는 편이 그래도 후손된 도리일 수 있겠다는, 덜떨어진 위인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번엔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려나? 해마다 벌초 철만 가까워지면 갖게 되는 갈등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