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유난히 더우면 ‘살인적 더위’라는 말을 쉽게 써왔다. 그런데 금년은 그 한 마디로는 설명이 부족할 만큼 정말 더웠다. 기상 관측 이래 처음인 폭염이었으며 거의 재난 수준이라 했다.
더위 정도가 오죽했으면 주방 옆에 둔 계란이 삐악삐악! 자연 부화된 사건(?)도 있었고, 그렇잖아도 더운 대구를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성한 말 ‘대프리카’란 조어가 생길 정도이니 금년 더위를 짐작할 만하지 않는가.
‘방콕’이라는 피서법도 있지만 내 형편에 따른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수박 먹기다. 먹으면서 생각나는 게 있어서 적는다.
아내와 두 식구이니 하나 사면 한 1주일은 간다. 그러면 신선도도 떨어지고 맛도 덜할 것 같아 딸과 나누기로 했다.
언젠가 들으니 수박껍데기 뒤처리가 힘들어 사 먹기가 쉽지 않다며 아예 안 산다고 했다. 그래서 아파트보다 비교적 뒤처리가 쉬운 내 집에서 속만 파서 서너 번 보냈다.
문제는, 다친 아내 아직도 맘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그 작업이 내 차지라는 것이다. 먼저 두미(頭尾)를 자른 두 토막은 아예 우리 몫으로 두고 나머지는 반으로 가른다. 말이 반이지 정확히는 사륙제(4:6)이다. 그 사륙제 중에도 정중앙 부분만을 주사위처럼 토막으로 만든다. 물론 껍질에 가까울수록 맛이 덜 할 것이 뻔하니 겉껍질 부분까지 손톱 길이만큼 남긴 것이 우리 몫이 된다는 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정중앙부분 토막 낸 것을 용기에다 담고 남은 것 ‘4’가 우리 차지다. 이 모든 작업 공정은 아내의 감독(?)하에 이뤄진다. 그것도 조금만 껍질 쪽으로 칼이 가면 아내의 제동이 걸린다. 이럴 때 엄처시하라 한다면 멋쩍은 개그가 되겠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나.
사실 우리 몫은 반이 껍질 부분이다. 아주 겉껍질만 깎아버리고 하얀 육질에다 그나마 조금 붙은 속살과 함께 섞어 먹었다. 어쩌면 당뇨가 있는 아내에겐 오히려 안성맞춤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이런 경우일 때 쓰는 말은  ‘미필적 고의’가 적격이다.
부모와 자식! 부모는 무엇이며 자식은 또 무엇으로 정의를 내릴까. 왜 부모는 자식 위해 모든 희생을 가없이 하는가. 그 사랑과 정성에 무슨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 것 그게 부모의 뜻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중 유독 내 아내만 자식 사랑이 유별났다는 말이 아니다. 까짓 서너 쪽 수박이나 줬다고 하는 얘기도 아니다. 셋 아이 키울 당시, 입히는 옷 남 얘들보다 남루할까 눈에 띄는 뉴패션만을 고집했던 때도 있었다. 이를 본 친인척들이, 본인은 변변한 차림새도 없으면서 자식들에게만 쏟는 정성에 걱정 겸 ‘시샘’을 자초하기도 했지만 아내는 무반응으로 감수할 때도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누구나 영원히 부모나 자식이 아니듯 나도 ‘자식’이었다가 ‘부모’가 된지 오래이다. 그래서 아내가 딸에게 수박 주는 것을 보면서 그 정성을 헤아려야 하듯 나도 부모의 자식이었으니 역지사지로 뒤돌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더 정확히는 내 부모 계실 때 효보다는 불효를 더 많이 했음을 막연히나마 뉘우쳐야 함이 내 말의 본뜻이다.
사실 미수까지 계셨던 어머니께 마음만은 효도해야 한다고 했을 뿐 그게 쉽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내 커가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내가 기쁨을 보았듯 옛날 내 어머니도 우리 자식들이 기쁨을 보여 드렸을까라는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자성과 함께 잠시나마 숙연해짐을 어쩌지 못한다.
부모는 자식 얘기하며 애연(哀然)해 하고, 자식은 부모 얘기하며 눈물부터 흘린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고, 하루아침의 부모 은공을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갚는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여기다 자식의 반포지효(反哺之孝)와 풍수지탄(風樹之嘆)이 있는가 하면, 부모의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의 우화’도 있는 것이 하늘이 정한 부모자식의 윤리다.
억겁의 연(緣)이 닿아야 부모·자식 된다는 불조(佛祖)의 가르침을 굳이 들지 않더라도 부모는 어디 비길 데 없이 무한히 큰 존재이다. 오늘의 인류가 걸어온 머나먼 여정에서, 특히 위대한 가치인 ‘모성’이 있었음을 누가 감히 부정하겠는가. 이것이 인종이나 국경 등 모든 경계를 초월한 ‘인류애’의 시원(始原)임은 자명하리라!
우리 사는 세상 어제가 옛날이라 할 만큼 풍속 세태 등이 나날이 변화해 간다. 잠시 눈을 돌리면 금방 낙후를 면치 못한다.
그 원인 중에는 끝없이 발전해 가는 물질문명을 들기도 하고 가치관의 혼돈을 말하기도 한다. 거기 더해 급격한 세태의 변화로 인한 ‘자식 사랑’, ‘부모 효도’도 변화해야 한다는 긍정적 논자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인륜 정도가 아니라 천륜을 거스르는 강상(綱常) 범죄도 있고, 도저히 인간이라 이름 할 수도 없는 패악을 저지르는 ‘인간’이 있기도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 간을 일러 ‘하늘이 내린 윤기(天然倫紀)’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온 세상을 품고도 남을 모성이야말로 그 위대함을 어디에도 비할 데가 없다. 비록 수박 껍질만 먹고 알찬 속살은 딸을 주는 내 아이들 ‘어머니’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여기 귀속되리라는, 내 철 늦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