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운다. 3년 동안 냉동 보존된 안동 간 고등어는 물고기 의학계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바다로 돌아 갈 수 있을까. 지느러미를 도려내어야만 멈추어질 골몰, 고등어가 파랗게 우는 새벽을 듣는다. 날마다 꽃의 변증법은 벽에 피어있다. 정반합의 분홍 꽃송이는 순풍순풍 꽃송이를 낳고 자꾸 낳는다. 똑똑해빠진 꽃들이 침대 위로 와글와글 지껄이는 아침, 골목을 두리번거리는 핼쑥한 앰프소리, 극복 못한 시차의 물건 목록은 곧 떠나간다. 과거로부터 불시착한 소리라는 말은 날 멀리 데려간다. 발가벗은 아이가 복도를 향해 뛰어간다.

아침 출근길 택시 안에서 그날의 하늘을 닦아주고 구름의 심장을 꺼내 담는 고층 빌딩 유리창 닦이를 보았다. 포도에는 추적추적 무너진 구름의 울음이 흥건했다. 빼 꼼이 올려다보는 택시 기사의 귓속에 자란 털이 호기심처럼 기어 나와 있었다. 안락한 위태로움이 추처럼 오락가락하는 서커스, 눕다시피 앉은 내 귓속에도 안테나 같은 털이 호기심처럼 기어 나와 있었다. 안락한 위태로움이 추처럼 오락가락하는 서커스, 눕다시피 앉은 내 귓속에도 안테나 같은 털이 소복이 길어 나왔다. 구름의 심장은 매매가 되나, 나는 구름의 신장이 필요하다. 알 에이치 플러스 비형의 이식 가능한 신장 하나와 무너지는 구름의 수혈까지도, 절망이 희망을 나무라는 소리가 들린다. 이 일기는 누군가 먼저 써본 적이 있을까.

혼자 살게 된 할머니는 뒤늦게 본 자식처럼 마당 한켠에 소국(小菊) 몇 그루를 심어놓고 쳐다보았다. 향기는 죽음을 묵묵히 흘리고, 살비듬이 꾸물거리는 할머니의 이불위로 기어올랐다. 흙에다 말해진 적이 없는 쓸쓸함을 접붙이는 것이 꽃을 심는 일, 나는 점점 굳어가던 한 쓸쓸함을 곁눈질 했다. 할머니는 해마다의 가을에 향기의 비소(砒素)를 흡입했으므로, 어느 날 낮게 패인 웅덩이로 들어가 흐지부지한 몸을 주저 앉히셨다. 그저 죽음은 끝장난 쓸쓸함, 누구내의 밭 자투리에 붉고 하얀 작약 무더기가 소중하게 피어있다. 이 꽃의 환영은 내 죽음에 앞서 걸어갈 기미(幾微)다. 내 머리는 하얀 간질을 앓으며 꽃의 머리를 거둬들인다.

수채화 같은 하늘이 곱다. 누가 뿌린 물감일까. 벙거지를 쓰고 지나가는 노파가 을씨년스럽다. 말라비틀어진 잔디의 잎사귀가 헐떡거리다 못해 생을 포기하는 모양이다. 제비꽃 씨방이 터졌다. 봉숭아 꽃망울도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꽃잎을 돌멩이로 빻아 손톱에 실로 찬찬 메어주던 할머니의 사랑을 추억한다. 민들레의 갓털이 멀리 여행을 떠난 지가 오래다. 참새 한 쌍이 기와지붕 밑에 둥지를 틀고 찍찍거리는 새끼에게 벌레를 물어다 먹이기에 바쁘다. 라디오엔 진돗개가 자기 집 안주인을 물어 죽였다는 기상천외한 기사가 들려온다. 자기를 키워준 주인을 물어죽이다니, 동물도 인간세상과 다를 바 없다. 시원한 소나기라도 한 줄기 내렸으면 좋으련만…….

※ 이 시는 9년 전 필자가 시와 반시 문예대학 재학 중 습작한 현대시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