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언니)를 생각합니다
옥중에 갇혔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의 서훈 등급이 겨우 3급?”이라고 쓴 한 일간지 기사가 나왔다.
‘3·1독립운동’하면 유·무명 순국·순절의 의사와 열사가 먼저 떠오른다. 그중 해방과 6·25 전후 세대들의 마음속에서의 잔상(殘像)은 유관순이 상당 부분을 점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만큼 아직 생각이 미성숙일 때 들은 그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의 의미가 컸으며 그 세대들(나 포함)이 배운 유관순의 노래가 청순한 심성에 끼친 영향이 컸을 테니까 말이다.
당시 우리 집에는 공직에 있었던 큰형님이 가져온, 1949년에 발행된 ‘독립혈사(血史)’가 있었다. 내 초교 4학년이 돼서야 교과서라고 살 수 있을 만큼 보고 싶어도 볼 책이 없을 때 유일한 볼거리였다. 그때 유독 유관순에 관한 것만 보고 또 봤기로 어려운 다른 내용보다 각인이 된 것이다.
또 ‘3·1운동편’에서 손병희의 사진 설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못된 무리의 우두머리를 ‘괴수’라 하는데 손병희를 ‘피고의 괴슈 손병희’라고 썼기 때문이다. 다시 들여다봤더니 그 신문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였다. 성인이 된 훨씬 훗날 다시 봤더니 ‘적이 쓴 기사이니 독자는 참량(參量)하시라!’고도 씌어 있는 것을 보기는 했다.
그 혈사에는 ‘순국처녀 유관순 양’이라고 씌었고 첫 추념일엔가는 당시 언  론인인 설의식(薛義植) 선생이 쓴 추념사가 실려 있었다. 이른바 도입부 몇 소절은 금방 욀 정도로 쉽게 읽었다.
“성은 유요 이름은 관순이니 이 나라의 딸이다. 도적의 사슬에 얽매인 이 고장에 태어나서 총과 칼에 시달린 채 비와 바람에 부대끼기 열 이오 여섯, 천생으로 타고 난 맵고도 붉은 맘에 찾아든 겨레의 설움을 그대로 품고, 기 미년 3월 1일에 천안道(*조선시대 察訪이 있었던 행정구역은 광복 직후까지 道로 썼다.) 아내(並川)를 뒤흔든 자유군(自由軍)의 선두를 맡았으니 이 곧 순국의 처녀, 샛별 같이 빛나는 우리의 꽃이었다. (…)날마다 밤마다 ‘독립’을 부르짖고 ‘만세’를 불렀다. 소리 한 번에 악형이 두 번이오 소리 두 번에 난장(亂杖)이 열 번이라. (…)이리해 거룩한 ‘나라의 딸’은 필경 오랑캐의 갈퀴에 찢기어 육시(六屍)로 갈래되니, 원통해라 열일곱의 꽃봉오리! (…)그 거룩한 방향(芳香)이 이 고장의 굽이굽이에 풍기게 하시라.”
이 추념사가 너무도 절절해 지금의 초중고생에게 유관순의 ‘맵고도 붉은 마음’을 알기나 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발췌해서 적었다. 더구나 조변석개의 교과서 정책으로 유관순을 아예 빼기도 하고 넣어도 사진도 없이 한두 줄로 소개하니, 그나마도 배우지 않아 유관순이 누구인지 모르는 학생들이 혹시나 보게 될까 하고 적어 보는 것이다.
내 철이 들며 그때부터 ‘글 짖기·쓰기’에 눈을 떴던지 금방 암기가 돼 유관순 얘기가 나오면 그걸 자랑이나 하듯 이른바 추임새를 넣어 가며 독송을 하곤 했다. 서정문, 서사문이 있는 줄도 모르던 시절에 그 쉽고 간결한 문체로 시작한 서사문이 내 글짓기·쓰기를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됐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소년 시절의 감흥이 일생을 두고 자양분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말이다.
사당동 3·1공원에는 유관순기념탑도 서있고,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공훈에 비해 너무 낮은 등급이니 격상·조정해 달라는 운동이 천안시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풍전등화의 나라를 순국으로 불태운 그 구국의 일념을 경중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만 왜 처음부터 3급이 됐는지가 더 석연치 않다. 그것이 분명 문제 제기의 본질과 무관치는 아닐 것이라는 유추를 하게 한다. 지금 정부는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역사 들추기에 함몰돼 있어 국력을 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혈사는 발행 목적이 구국일념의 공훈 상찬과 선양이 목적일 터이니 설령 사실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과장도 좀 있었을 것이다.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려 회의장(만국평화회의) 입장을 시도했으나 거부당해 할복 순사했다고 혈사에 기록돼 있지만, 그러나 그 훨씬 후 의분(義憤)에 분사(憤死)했다고 밝혀진 일도 있다. 그건 시의적(時宜的)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유관순이 가녀린 몸으로 독립 투쟁을 하다 목숨을 바친 행적을 두고 ‘서훈 등급’ 운운 하는 것은 숭고한 순국에 대한 예우는 아니다.
이러다간 오래지 않아 동양의 ‘쟌다르크’라는 유관순이 역사 저편으로 사라질지도 모를 우려를 하게 한다. 오늘의 한국사 교육에서 예민한 사안에는 주어(主語)도 없이 모호하게 기술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과서로 배운 중고생의 역사의식이 어떨지도 문제지만, 가장 엄중해야 할 역사가 이래도 되는지 안타깝고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 지금 시국으로서는 그게 더 큰 현안(懸案)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맵고도 붉은 마음’이 영원히 기려지길 빌어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