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싫어하는 사람 있는지 없는지 내가 조사해보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내가 처음 음악을 접한 것은 6·25 전 초교 입학 때이다. 처음 대하는 일 모두가 신기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는 곳을 비집고 들여다봤다. 누가 두 손으로 뭘 누르니 희한한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내 태어나서 새소리 바람소리만 듣다가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소리도 있다니, 그게 바로 내 처음 들어본 풍금이라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른 후 이성에 눈을 뜰 때 내 온 정신을 혼미케 하는 미소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를 보는 별빛 같은 눈동자는 유난히 광채를 발하였고 볼우물이 지며 살짝 짓는 미소는, 누구나 마음이 얼굴에 나타난다고 하듯 그 나타난 청순미가 나를 뇌쇄시키고 말았다. 그의 친지들이 미스코리아에 나가라고 했을 만큼의 체구, 미모 등 요건을 모두 갖춘, 명문 여중(당시는 중졸만도 고학력?)을 나온 재원(才媛)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이전에, 내 가까운 지인에게 소설이나 한 번 써보겠다고 얘길 했더니 그는 작가는 많이 읽고, 쓰고 그와 더불어 그 못지않게 ‘로맨스’도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문학의 행로가 곧 로맨스요 로맨스의 어의(語議)가 곧 소설문학이라는 조언도 주었다.
예로 든 것이 이광수와 모윤숙이었다. 끝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모윤숙은 명작 ‘렌의 애가’를 썼고 나도 읽었다. 또 1920년대 인텔리 소프라노 윤심덕과 목포 갑부 청년 지식인 김우진이 관부연락선의 귀국 도중 현해탄에 몸을 던진, 당시로는 그야말로 죽음 그 자체도 로맨틱한 정사사건도 있었다. 그녀의 대히트곡 ‘사의 찬미’도 예술(문학)의 한 결과물이었다.
시성 단테는 아홉 살일 때 여덟 살의 베아트리체를 만나서부터 쓴 자전적 장편 대서사시 ‘신생(新生)’과, ‘플라토닉 러브’의 표상이라는 ‘신곡(神曲)’도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에서 나왔다. 또 약혼자가 있는 여성을 사랑하다 자살을 택한 베르테르를 모델로 한 괴테의 센티멘털리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있지 않는가.
모윤숙이 자신의 호를 ‘이광수’라는 태산준령을 넘는 구름이 돼 외로이 흘러가는 구름이라고 해 ‘영운(嶺雲)’이라 쓴 것을 보고 나도 그 매혹녀를 보해미안(Bohemian)이라고 나 혼자 쓰고, 부르기로 했다. 용기를 내어 이른바 ‘러브레터’를 썼다. 그땐 고전적 방법인 러브레터가 유일한 구애 방법이었다. 뭐라고 썼는지 기억은 없지만 요샛말로 ‘패싱’, 그것이 끝이었다.
그 충격은 오래 갔다. 실연의 홍역을 호되게 치른 것이다. 미성숙의 사변적(思辨的)이기보다는 감성이 더 예민할 시절의 실연은 그래서 더 큰 충격이었다. 나름으로 풋사랑은 분명 아니었다.
외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갖고 있는 지인 집에 갔다. 애잔한 곡조의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사는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나 곡조는 내 누선을 간질이는 정도를 넘어 왈칵 나도 모르게 눈물을 쏟게 하고 말았다. 그 눈물 정말 뜨거웠다. 그걸 훔치는 내 손이 그걸 느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를 본 지인, ‘야, 너 그 얘 사랑이 도를 넘었구나! 그 절절함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명작 하나 써 보면 어떨까…?’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라디오도 귀한 시절에 입에서 입으로 전파하는 유행가는 듣고 배우고 했지만 내 누선을 촉발시킨 그 노래는 생전 처음 듣는 노래였다. 그 눈물, 이슬비도 가랑비도 아닌 소낙비였다. 그 훨씬 뒤에 안 일이지만 박목월 작시에 김성태 작곡인 ‘이별의 노래’였다. 아! 나를 울게 한, 펑펑 울게 한 이별의 노래였다. 내 폐부를 마구 흩트려 놓은 노래였다. 마치 내 실연의 아픔을 위한 격조 있는 가곡이 아닌가 하는 환상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내 고뇌와 맞아떨어졌다고 하면 분수도 모르는 일이 되겠지만-.
대문호의 사설(辭說) 한 줄이, 오페라 한 소절이 온 인류의 감동을 넘어 눈물을 쏟게 하듯 그 노래도 다르지 않았다. 이후 나는 가버린 그 보해미안을 애상하며 그 노래 수백, 수천 번을 불렀다. 그것도 꼭 스산하고 야멸차기까지한 달빛아래에서 말이다. 그 달밤이 곡, 가사 모두에 영탄(詠嘆) 같은 것은 할 새도 없이 통읍(慟泣)을 촉발시키기 때문이었다. 시구(詩句) ‘달밤이 싫어, 달밤이 싫어!’는 이래서 나온 것이 분명했으리라. 어느 날, 김동길 교수가 쓴 박목월 선생을 상찬하는 칼럼을 봤다. 그 말미에 박목월 선생이 쓴 “내ㅅ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 내ㅅ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을 소개하며 ‘이별의 노래’의 절절한 시를 지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생을 기린다고 썼다. 이 칼럼을 보며 내 한때 앓았던 열병이 선생의 이별의 노래 시구와 어쩜 그리도 맞아떨어지는지 알 길이 없다. 감히 원로시인께 무례를 범해도 어쩔 수 없다는 내 솔직한 심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노래, 음악, 가곡 그리고 더 나아가 오페라 등 인간의 예술적 창작물이 심금을 울리는 정도를 넘어 혼을 송두리째 빼어 놓는 ‘신비의 마력’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음악을 비롯한 모든 창작 예술의 영역이고 본령임을 알게 하는, 내 때 늦은 각성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아, 보해미안! 그대는 어느 하늘아래서 아직도 그 미태(美態)를 발하고 있는지 그게 몹시도 궁금한 오늘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