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공부 하고 있는 할머니 제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방금 전 00공모전에서 금상 수상을 통보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목소리가 사춘기 소녀처럼 들떠 있다.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음성의 억양으로 미루어, 아마도 그의 생애에서 다른 어떤 기념비적인 일보다 기쁨이 컸을 것이려니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참으로 장하다며 진정 어린 마음을 담아 축하를 보냈다. 그러면서, 그 영예로운 소식에 나 역시도 내심 뿌듯한 성취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가르침을 펼쳐 온 나날들이 그럭저럭 서른 해가 넘었다. 이제 내년이면, 돌아오는 갑자를 맞게 되는 나이이고 보면 인생의 절반을 그렇게 보낸 셈이다.
그 기나긴 세월을 두 도막으로 나누어 보니, 다시 절반은 어린 제자들을 가르친 시간이고 나머지 절반은 어른 제자들을 가르친 시간이다. 어린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무엇보다 공부 잘하는 것이 사랑스럽게 여겨졌다면, 어른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뭐니 뭐니 해도 글 잘 쓰는 것이 대견스럽게 여겨진다. 어린 제자들을 가르친 것에도 물론 그 나름의 보람을 느꼈지만, 어른 제자들을 가르친 것 역시 그에 못잖게 적지 않은 보람을 느낀다.
어린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공부 눈이 틔어서 하루가 다르게 성적이 쑥쑥 오르는 걸 보는 것이 즐거움이었다면, 어른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문장력이 좋아져서 글 솜씨가 나날이 팍팍 느는 걸 보는 것이 즐거움이다. 즐거움의 양상이야 서로 비교를 하지 못할 만큼 판이하지만, 즐겁다는 느낌 그 자체는 어느 쪽이 더하고 덜하고를 가릴 수 없이 똑같다.
“남에게 가르치는 것은 곧 반은 배우는 것이 된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정녕 그랬다. 꼭 가르침을 펼친 것만도 아니다. 그들을 가르치는 일이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로부터의 배움이 되기도 했다. 어린 제자들에게서는 시나브로 잃어져 간 영혼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길을 배웠고, 어른 제자들한테서는 여태껏 미처 모르고 있었던 삶의 알량한 지혜나마 돌아나게 하는 법을 배운다.
“나는 과연 성공한 인생을 살아 온 것일까?”
노상 번다스러운 일상사에 쫓기다 가끔씩 조용한 시간이 나면 스스로에게 던져 보는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머리가 가로저어지기도 한다.
인생의 성공을 바라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구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을 두고 성공한 인생이라고 여길 성도 싶고, 누구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큰 부를 쌓은 것을 가리켜 역시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우러러볼 높은 지위를 얻은 사람이든, 세상이 욕심낼 많은 재물을 모은 사람이든 나는 솔직히 그들이 크게 부럽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굳이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을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고 한 맹자의 인생삼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 평생의 절반을 오롯이 가르치면서 배우는 일에 바쳐 온 지난 세월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참 세상 물정 모르는 숙맥이로군” 하며 비웃음을 날릴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뭐래든 나는 그 일에 나름대로 긍지를 느끼며 자부심을 갖고 산다.
우리들 사람살이에서 가장 가치롭고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일까. 수행자가 화두를 참구하듯, 무슨 계기만 주어졌다 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러한 상념에 빠져들곤 한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를수록 그 횟수가 점차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늘어 간다.
결국 그 때마다 내가 항상 내리는 결론은 먼 훗날에 가서 세상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로 귀착된다. 그러기에 오늘도 가르치면서 배우는 즐거움을 그만두지 못한다.
단언컨대 교학상장敎學相長으로 상생의 보람을 안겨다주는 이 행복하고 보람된 일은 두 다리에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세상이 그 기회를 빼앗아가지 않는 한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