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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역사적인 인물사 #3고려·조선시대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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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6.07  14: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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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부문 왜곡(歪曲)되고 특정 문중에 경도돼 편집되었던 종래 고령지역의 인물사(人物史)를 재평가해 오직 객관적인 기준과 참고문헌(參考文獻)에 의해 고증된 인물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고령지역 인물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향토사의 귀감이 되는 고대부터 고려와 조선, 근·현대시대의 내용을 알리고자 한다.

문무관(文武官)
   
 

■ 강군보(姜君寶)-본관은 진주(晋州)이다. 증(贈) 중대광(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서 진원부원군(晋原府院君)을 지낸 창귀(昌貴)와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낸 윤보(允保)의 딸인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 안동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충숙왕 5년(1336년) 채홍철(蔡洪哲)이 지공거(知貢擧)로 선발한 문과(文科)에 장원급제한 남궁민(南宮敏)과 함께 등제(登第)해 정당문학(政堂文學), 첨의평리(僉議評理),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을 거쳐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을 역임하였고, 봉산군(鳳山君)에 봉해진 후 치사(致仕)하고 환향(還鄕)해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졸(卒)했으며, 시호(諡號)는 문경(文敬)이다. 묘는 성산면 어곡리 재석산 병좌(丙坐)에 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지은 만사(輓詞)가 전한다. 경남 산청군 단성면 봉양사(鳳陽祠) 서별사(西別祠)에 배향(配享)돼 있다. 후손들이 1958년 어곡재(御谷齋)를 창건해 공의 유덕(遺德)을 기리고 있다. 배위는 전객령(典客令)을 지낸 여진(呂珍)의 딸인 계림군부인(鷄林郡夫人) 경주김씨(慶州金氏)이다.
(참고문헌-진주강씨 박사공파 대동보 1권, 고령대관(1959)

■ 곽영희(郭永禧)-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덕수(德修)이고 호는 만취당(晩翠堂)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고제(高弟)로서 초계가수(草溪假守)를 지내고 예빈시부정을 역임(歷任)한 예곡(禮谷) 율과 승지(承旨)를 지낸 사성(思誠)의 딸인 청주정씨(淸州鄭氏) 사이에서 명종 15년(1560년) 1월 12일에 태어났다. 선조 39년(1606년) 식년(式年)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 유곡도찰방(幽谷道察訪)을 거쳐 흥덕현감(興德縣監)을 지냈다. 혼암(昏暗)한 조정을 만나게 돼 하루아침에 벼슬을 버리고 귀향(歸鄕)했다. 오봉(五峯) 이호민(李好敏), 인재(訒齋) 최현(崔晛), 석담(石潭) 이윤우(李潤雨), 외재(畏齋) 이후경(李厚慶), 죽헌(竹軒) 최항경(崔恒慶), 동계(桐溪) 정온(鄭蘊),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 등 제현과 교유(交遊) 했다. 외당숙(外堂叔)인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이 곽덕수(郭德修) 영희(永禧)의 죽음을 애도(哀悼)한 제문(祭文), 만사(輓詞), 시(時) 등이 한강집(寒崗集)에 실려 있는데 공의 죽음을 슬퍼하는 한강 정구 선생의 만사 중 일부를 소개한다.
感念先尊府(감념선존부) / 생각하면 이 몸은 그대 선친과
情猶骨肉親(정유골육친) / 사귄 정이 골육과 다름 없는데
忠純傾士友(충순경사우) / 진실함은 사우를 압도하였고
선조 39년(1606년) 2월 12일 90세 된 어머니 청주정씨와 병든 수의부의 경주김씨 아내 및 외아들 곽홍점(郭鴻漸)을 남기고 졸(卒) 했다. 묘는 쌍림 송림리 상부곡(上釜谷) 선고(先考) 묘계하(墓階下)에 있으며, 쌍분(雙墳)이다. 재현(齋睍) 최인(崔認)에게 주었던 별시가 유고(遺稿)에 있다.
참고문헌-국조문과방목, 한강집, 고령군지(1996년), 현풍곽씨 예곡궁, 태허정 파보

■ 나순손(羅順孫)-본관은 수성(壽珹)이며, 호는 취원정(聚源停)이다.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과 용궁현감(龍宮縣監)을 지낸 상지(尙之)와 승지(承旨) 예(芮)의 딸인 하빈이씨(河濱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종 때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하동부사(河東府使)가 돼 학교를 세워 유풍(儒風)을 진작(振作)시키고 민폐(民弊)를 일소(一埽)해 선정(善政)을 베푸니 백성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웠다고 한다. 단종 1년(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실권을 장악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세조 원년(1455년)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자 관직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와 정자를 지어 취원정(聚源亭)이라 하고 선비들과 시서예락(詩書禮樂)을 즐겼다. 또한 뒷산을 파서 농사짓기에 편리하도록 잿길을 내었고 가뭄을 막기 위해 못을 파서 경작수리(耕作水利)를 편하게 했다. 길손들이 그 잿길을 하동로(河東路)라 일컬었고 몽리민(蒙利民)들은 그 못을 하동못이라 일컬었다. 하동로는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 선생이 달성 다사읍 문산리의 영벽정에서 읊은 시에 “반여사굴하동로(盤如蛇屈河東路) 즉 뱀같이 구불구불 하동로”라 노래했고, 京山誌)에도 이 사적(史蹟)이 실려있다. 생몰년(生沒年)은 미상(未詳)이다. 배위는 좌사간(左司諫) 한(閑)의 딸인 숙인(淑人) 성주배씨(星州裵氏)이다. 묘는 다산면 지동 현재 곽촌리 남중강 유좌(酉坐)에 있다.
참고문헌-경산지, 수성나씨 세보(무인보), 고령군지(1996년)

■ 이극강(李克剛)-본관은 성산(星山)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행(行) 사간원(司諫院) 헌납(獻納) 지제교(知製敎)를 지낸 송오공(松塢公) 사징(士澄)과 목사(牧使) 인실(仁實)의 딸인 숙인(淑人) 고령이씨(高靈李氏)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음직(蔭職)으로 언양현감(彦陽縣監)에 임명돼 엄명(嚴明)하고 인서(仁恕)했으며, 정사(政事)를 관장함에 실제로 은혜를 받게 했다. 벼슬이 교체돼 돌아옴에 이르니 주민들이 선정비(善政碑)를 세워 칭송해 이르기를 “북으로 향해 풍의(風儀)를 바라보는 아래요 남에서는 교화(敎化)하는 가운데 기뻐하였네”하고 하였고 주지(州誌)에 말하기를 “청백한 이름을 새겼다”고 했다. 생졸년은 미상이다. 묘는 개진 구송천면(舊松泉面) 직동촌후(直洞村後) 축좌(丑坐)에 있으며 배위 포산곽씨와 합폄(合窆)이다.
참고문헌-성산이씨 세보(무자보), 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 이성(李成)-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사심(士深)이다. 군자감(軍資監) 주부(主簿)를 지낸 정유(正濡)와 성태(聲泰)의 딸인 의성김씨(義珹金氏) 사이에서 세조 7년(1461년) 외동 아들로 고령 대가야읍 내상리 황곡(黃谷)에서 태어났다. 성종 때에 무과(武科)에 급제해 선략장군(宣略將軍)과 용양위(龍驤衛) 보공장군(保功將軍) 행(行) 충무위(忠武衛) 부사용(부사용)을 지낸 기(璣)의 딸인 고령박씨(高靈朴氏)이다.
참고문헌-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66년), 여주이씨 문순공파 세보(병신보)

■ 이성령(李成齡)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태로(泰老)이다. 처사(處士) 장(墇)의 셋째 아들로 명종 6년(1551년)에 태어났다. 선조 때 무과(武科)에 급제해 군자감(軍資監) 봉사(奉事)를 거쳐 조선시대 오위(五衛)에 두었던 정6품 무관직(武官職)인 사과(司果)를 지냈다. 묘는 고령 쌍림면 월막리 산31-1번지에 선고(先考) 묘소 아래에 있다. 배위의 성씨(姓氏)는 실전(失傳)이다.
참고문헌-고령대관(1959년), 고령군지(1996년), 여주이씨 문순공파 세보(병신보)

■ 한인적(韓因迪)-본관은 청주(淸州)이다. 보문각(寶文閣)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한연(韓璉)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명 인적(仁迪)이라고도 하며, 고려후기 문신으로 참판(參判)을 지냈다. 생졸년(生卒年)은 미상(未詳)이다.
참고문헌-고령군지(1996년), 청주한씨 몽계공 파보(정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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