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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역사적인 인물사대가야시대의 인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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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30  11: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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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부문 왜곡(歪曲)되고 특정 문중에 경도돼 편집되었던 종래 고령지역의 인물사(人物史)를 재평가해 오직 객관적인 기준과 참고문헌(參考文獻)에 의해 고증된 인물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고령지역 인물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향토사의 귀감이 되는 고대부터 고려와 조선, 근·현대시대의 내용을 알리고자 한다.

-이뇌왕(異腦王)
석웅승전에 이르기를 “대가야국의 월광태자(月光太子)는 정견모주의 10세손으로 그의 아버지는 이뇌왕이며, 신라에 혼처를 구해 이찬 비지배의 딸을 맞이해 태자를 낳았으니 이뇌왕은 뇌질주일의 8세손”이라 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혼인관계가 맺어진 시기는 522년이며, 일본서기 계체기 23년(529년)에는 신라 왕녀와 결혼한 대가야 왕의 이름이 기부리지가로 기록돼 있다. 대가야는 신라와 혼인관계를 맺어 우호를 돈독히 하고자 했다. 그러나 529년이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지만 이미 신라 왕녀와의 사이에 월광태자가 태어났기 때문에 파혼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신라와의 우호관계(友好關係)는 깨졌다.

-가실왕(嘉悉王-嘉實王)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가실왕으로 기록되었고 악지에 인용된 신라고기(신라고기)에서는 가실왕으로 기록돼 있다. 양자 모두 가실왕이 가야국의 국왕으로 기록돼 있어 연맹체 중 어느 가야국의 국왕이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가실왕과 우륵의 이야기가 실려있어 대가야의 왕임은 분명한 것으로 삼국사기, 악지(樂志)에 의하면 “가야금은 중국 악부의 쟁(箏)을 본받아서 만들었다. 신라의 고기(古記)에 가야국 가실왕이 당의 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가실왕은 6세기 초에 재위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5세기 후반 대가야의 활발한 대외 활동을 통해 선진 외래 문물이 수용되면서 악과 악기에 대한 이해와 학문적 소양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가실왕의 악(樂)에 대한 이해는 삼국사기 악지에 “왕이 이르기를 여러나라의 방언이 각각 다른소리를 내니 어떻게 하나로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하며, 성열현(省熱縣) 사람 우륵에게 명해 악곡을 짓게 한 배경을 말한데서 알수 있다. 지은 악곡은 가야의 지명으로 가실왕이 악을 통해서 대가야 지역에 대한 패권의식(覇權意識)을 표현하려 한 의도가 담겨있다.

-도설지왕(道設智王)
삼국사기 권(卷) 29, 고령현(高靈縣)에 고대 가야국은 시조인 이진아시왕으로부터 도설지왕까지 16세 520년이라고 기록된 것을 통해 대가야의 마지막 왕임을 알 수 있다. 가실왕이 551년 이전 어느 시기에 사망했다는 것과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당한 562년 사이에 약 100년 이상의 시간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약 30년 정도를 평균 재위 기간으로 가정해 보면 가실왕 이후 도설지왕 사이에 3명 이상의 왕이 재위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월광태자(月光太子)
석순응전에 따르면, 가야산신인 정견모주의 10세손이자 시조 이진아시왕의 9세손으로 아버지는 대가야의 제9대 왕인 이뇌왕이고, 어머니는 신라의 이찬 비조부의 딸이다. 두 나라가 혼인을 통해 동맹관계를 맺었으나, 후에 동맹을 깨뜨린 신라에 의해 562년 대가야가 명망했다. 그 후 월광태자는 승려가 돼 가야산 아래 월광사(月光寺)를 짓고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우륵(于勒)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의 고기에 가야국 가실왕이 당의 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다. 왕이 “여러나라의 방언이 각각 다른 소리를 내니 어떻게 하나로 통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 하고 악사 성열현인 우륵에게 명해 12곡을 짓게 했다. 여기에서 보이는 우륵 12곡은 가야 각국의 방언을 일원화한 것으로 각 지역의 음악을 이해하고 이를 기본으로 편곡해 대가야 국왕의 치적을 찬양하는 곡이었을 것이다. 노래가사를 짓는데 있어, 기본적으로 국가 의례 절차와 규범 및 왕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데, 우륵은 이러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우륵은 520년을 전후해 가실왕의 부름을 받아 대가야 도성(都城)으로 들어오게 된다. 540년 이후 백제와 신라의 압박이 현실화 되는 가운데 가야제국의 자구 노력은 실패하고, 가야 소국들은 각기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가야 내부마저 기강이 문란해 지고 외부 위협에 둔감해지는 등의 정치적 혼란으로 우륵은 신라로 망명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국원경(國原京)에 살게 하면서 계속 악사로 활동할 수 있게 했다. 악곡을 만들어 진흥왕 앞에서 연주를 하기도 하고, 왕으로부터 명을 받은 제자들에게 전수하기도 했으며, 신분적으로도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그의 12곡은 제자들에 의해 5곡으로 정리돼 신라의 대악으로 지정됐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악성우륵의 생애와 대가야의 문화, 우륵의 생애와 활동, 대가야박물관, 민족문화논총,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우륵문화발전연구회, 홍익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일본서기(日本書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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