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대신 가명을 쓰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컴퓨터며 스마트폰 같은 기기들이 널리 보급되고부터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는 특히 그러한 경향이 짙다.
이른바 ‘닉네임’으로 불리는 온라인상의 이름이다. 아마도 익명성의 시대적 영향이 큰 탓일 게다. 너도 나도 시샘하듯 닉네임을 만들어 쓰다 보니 닉네임과 그 당자가 도저히 연결이 되지 않을 때가 항다반사이다.
사실, 나이 들어가면서 불편을 겪는 일 가운데 하나가 호칭 문제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친구들끼리 만났을 때 이름을 불러도 별반 어색하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이제 다 큰 자식들 앞에서 “00야” 하고 호명을 하면 듣기에 그다지 좋지가 않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슬기로운 해결 방안을 갖고 있었다. 지난날엔 나이 든 사람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금기시 되었었다. 그래서 남정네들 사이에서는 자字나 호號를 만들어 불렀고, 여인네들의 경우는 당호나 택호를 지어 이름을 대신했다.
어딘지 모르게 이름보다는 자와 호가 한결 점잖고, 택호며 당호에서 훨씬 품격이 느껴지는 성싶다.
사이버 세상이 도래하고부터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나 호보다 닉네임을 쓰는 경향이 대세인 것 같다.
꽃 이름에서부터 시작해 풀 이름, 나무 이름, 동물 이름, 별자리 이름 등등 자연계에 존재하는 형상 가진 것이라는 것들의 이름은 모두 동원된다.
거기에다가 국적 불명, 의미 불상不詳한 조어들까지 별의별 닉네임이 다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연예인들은 예명을, 문인들은 필명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예인 가운데는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유한 성姓마저도 별 의식 없이 갈아치워 버리는 이들을 심심찮게 본다. 이름을 바꾸는 것이야 또 그렇다 쳐도 성마저 팽개치는 행위는 분명 조상을 욕되게 하는 짓임에 틀림이 없을 터이다.
항용 단호한 의사표현을 할 때 “만일 지금 하는 말이 틀리다면 내가 성을 갈지”라는 관용어법을 쓴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만큼 자신의 뿌리로서 성을 중요시한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름은 물론, 심지어 성까지 바꾸기를 예사로이 자행하니 그 속마음이 퍽 궁금해진다.
비단 연예인들뿐만이 아니다. 작가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적지 않다. 예명을 쓴다고 더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필명을 쓴다고 더 좋은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닐진대, 왜 굳이 부모가 물려준 소중한 이름을 헌신짝처럼 팽개쳐 버리는지 그 의식 상태를 도무지 모르겠다.
우리가 일제치하에서 고통 받고 있었던 지난시절에는 그들이 그렇게나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데도 끝까지 본래 이름을 지키려고 목숨마저 내놓기를 불사했던 민족이 아니던가.
그랬던 백 년 전과 비교해 보면 본래의 이름을 너무 가볍게 치부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함부로 이름을 지어서도 아니 되겠지만, 함부로 이름을 고쳐서도 좀 곤란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본명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내면세계를 지녔을까. 요즘 나는 그들의 심리 상태를 궁구하느라, 그 부질없는 짓에 붙들려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