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언젠가 고향 얘기하며 건강이 이만할 때 놀고 자랐던 그 추억 어린 곳 꼭 한 번 가서 돌아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먹이 꼴 뜯고 소 먹이던 야산과 그 골짜기의 생태계는 어떻게 변했으며, 지금도 개골창(그때 야트막한 산골짜기를 부르던 이름) 맑은 물에 물고기(중태기)와 가재는 종의 보존(?)이나 하고 있는지 그게 제일 궁금하다.
그런 기회 언제 올까 여가만 보고 있는데, ‘도랑 치고 가재 살리고’라 뽑은 표제어가 본지 4월 16일자에 실린 것이다. 거기 귀에 익숙한 도랑 치고 가재 ‘잡고’가 아니고 ‘…살리고’라니 이 한 마디에 오늘의 오염된 생태계를 축약하기에 제격이었다. 또 본문에서 본 ‘생태계’는 일상어지만 ‘실개천·도랑’은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상큼한 우리말이니 더욱 그랬다. 실개천·도랑! 듣기만 해도 자연스레 우리 가곡 ‘옛 동산에 올라’가 떠오른다. 뿐만이 아니다. 가재! 이 말만 들어도 70여 년 전의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가 된다. 십여 년 전 인왕산 개울에서, 옛 생각이 나 돌 밑을 뒤적였더니 가만히 엎드려 있는 가재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던가 보다.
6·25 전후일 때 땔나무 한 짐 해서 지고 내려오다 개골창에 들어가 돌 틈, 바위틈에 손을 비집고 넣어 가재를 잡는다. 어떨 땐 엄지찝게발에 찝혀 놀라 손을 빼면 가재가 들려나오기도 한다. 손이 낚시 미끼가 되는 형국이었다. 그렇게 잡힌 가재, 분하고 억울함의 표현이듯 꽁무니를 마구 털어대는 것이었다. 그걸 알 겨를도 없는 애들은 즐겁기만 했고 그 재미를 한마디로 형용키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 시절의 궁금한 것이 또 있다. 우리 밭이 상당히 깊은 골짝 아래에 있었는데 그 골짝에 공룡알 같이 생긴 바위가 아주 묘하게도 계란 세운 것처럼 서 있었다. 둘은 1m 정도이고 하나는 반쯤 묻혀 있는 축구공만한 원형이었다. 그땐 예사로 봤지만 지금은 지구 곳곳에서 공룡 화석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때 봤던 그 바위를 떠올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바위 색깔이 청색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젠 그나마 공룡이나 화석에 대한 일반적 상식도 좀 듣고, 알고 해서 혹시나 하고 꼭 가고 싶은 곳이다.
또 있다. 내 고향 법산서 10여리 떨어진 곳 월촌에는 논 한가운데 전혀 가공도 하지 않은 자연석 비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왜 거기 섰는지, 혹시 각자(刻字)라도 돼 있는지 등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이야 별 문제가 없지만 그 당시만 해도 벼 한 포기 더 심는 것이 절박할 때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분명 연유가 있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토속 신앙인 장승 등 무슨 샤머니즘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역사에서의 샤머니즘의 의미는 부정할 수 없는 정신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혹시, 지금 ‘가야국 역사 재조명’이 활발한데 여기 무슨 세상을 놀라게 할 비밀은 숨어 있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하는 그 돌비석이다. 세계 7대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영국의 스톤헨지는 거대 군락을 이뤄 수백 개가 서 있지만, 여긴 논 한가운데 높이 2m 남짓한 한 개 자연석을 단을 쌓고 그 위에 세웠으니 더욱 궁금증이 가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어느 곳이 가고 싶지 않을까만 다음 이곳이야말로 정말 가고 싶은 곳이다. 내 어머니 젊은 시절 70여리나 되는 친정 사도실을 애기 업고 갔다니 거기야말로 사모사(思慕辭)를 새기며 꼭 답사하고 싶은 곳이다. 물론 어림잡아 80여 년 전이니 길도 오늘과 같진 않겠지만 어머니를 그리는 상징적 의미 그것 하나만으로도 답사의 의미는 충분하리라!
당시의 모든 상황을 오늘에 비한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실제로 상전벽해라 할 만큼 변화해버린 오늘인데 단순히 어머니가 걸었던 그 길을 답사한다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친정길을, 오늘의 이 편리해진 교통통신을 생각지 말고 마치 고대 ‘실트로드’ 만큼의 어려움을 연상하며 자식이 체험해봐야 한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국도는 그때 이미 구축돼 있었지만 도보(徒步)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때로는 고개도 넘고 도랑물 시냇물도 다리 걷고 건너야 하고, 또 그 길도 꼬불꼬불 오솔길이었을 텐데 70여리를 어머니가 걸었을 그 여정(旅程)을 내 몸과 마음으로 사모곡을 되뇌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어떨 땐 아버지와 다투시다가 휑! 가셨다고도 하니 불경스럽지만 우습기도 하고 한편은 안쓰럽기도 하다.
도랑과 실개천, 그리고 가재! 참으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되살아나는 아름다운 낭만의 어휘들이다. 오늘에 와서 시의적절한 친환경 정책으로 ‘도랑 살리기’를 하고 어린이 생태교육장도 만든다니 그 격세지감에 반갑기도 하다. 그래서 더 가고 싶은 고향이다.
그때 앞 시냇물은 송어 피라미 잡고, 뒷산 골짜기는 애들의 놀이터였다. 거긴 오늘과 같은 생활찌꺼기는커녕 우리들이 끝없이 향유만 해온 물질문명의 오염된 퇴적물도 없는, 원초적 청정지역이었다. 따라서 그때의 자연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얼마나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 내 궁금증의 전부이다. 하긴 가고 싶은 곳이 거기뿐일까만 일단 우선순위로 꼽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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