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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지방의 불교2. 고령지방 불교역사와 사상의 전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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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25  15: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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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도읍지인 고령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사찰이 있다. 지역에는 고대부터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불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유물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고령지역의 불교역사와 사상적 특징을 기획취재를 통해 알리고자 한다.

고령지역은 대가야시기의 한 왕조가 있던 때로부터 오늘의 고령군으로 그 중심지는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지만 그 위상이나 공간적인 범위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므로 공간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사상적 흐름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지리적 특색의 변천과 종교적 사상적 변천의 차이를 고려해 각 왕조시기 사상의 보편성과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고대인의 원시 신앙-선사시대의 사상적 내용을 전하는 자료로 바위그림(암각화)가 있다. 고령지역의 회천과 안림천 변에는 양전동 알터 바위그림과 안화리 바위그림, 안화리 바위그림, 지산동 30호분 개석에 새겨진 바위그림 등이 있다.
이 그림들 속의 동심원은 고대인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태양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 기하문은 천신과 지신을 상징한다. 이는 선사시대 농경사회의 태양신과 지신을 통해 풍요로운 생활을 기원하는 제장이었다.

권력과 신분 태생 시기 신앙의 변화-지산동 30호분은 바위그림이 그려진 돌을 하부석과 개석으로 사용해 이 시기에는 이미 바위그림이 신앙의 대상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기왕의 신앙체계를 파괴하는 새로운 신분의 존재가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은 이를 확인해주고 고분시기의 사상체계로 전환되었음을 말한다. 대가야지역에서 계세사상을 보여주는 것은 고분이다. 고분들은 사후에도 현세를 내려다보도록 산성을 배경으로 하고 높은 곳에 크게 만들었으며, 순장을 해 사후에도 현세의 생활이 계속되고 국가의 위력을 크게 한다는 인식이 관습화 됐다. 이는 대가야에 불교가 유입됐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고 그 경로나 성격을 나타낸다.

대가야 시대 불교의 유입-삼국유사가락국기의 기록에 5세기 중엽 이미 대가야에 인접한 금관가야에 왕후사라는 사찰이 8대 질지왕에 의해 세워졌다. 진흥왕 23년(562년)에 사다함이 대가야의 성문인栴檀梁(향나무로 세워진 성문)을 제일 먼저 공략했다. 지산동 44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청동합에 담긴 향나무 목편 등은 대가야에 이미 불교가 들어왔음을 추정케 한다. 44호분의 청동합은 5세기 남제가 대가야에 사여한 것으로 보인다. 고아동 벽화고분에서 발견된 연화문은 불교의 전래 가능성과 수용층이 지배계층임을 보여준다. 이 고분은 횡혈식 석실묘로 연화문은 백제의 와당, 무녕왕릉 출토의 탁잔과 근사해 6세기 백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고아동 벽화고분의 연화문이 불교가 고구려에 들어오기 전의 고구려 안악3호분과 유사하지만 안라국과 고구려가 내통했다는 일본서의 기록과 의령에서 출토된 고구려 금동여래입상의 명문에 고구려 낙랑동사 주지 敬과 그 제자 연을 비롯한 40명이 만든 천불 중 29번째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불교가 고구려로부터 가야로 직접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 대가야의 외교관계를 통해 남제로부터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479년 대가야의 하지왕은 남제에 사절단과 조공을 보내고 남제는 선진문물로 답했다. 이때 대가야왕 하지에게 보국장군 본국왕이라는 칭호를 제수했다. 당시 남제는 수천의 사찰과 수십 명의 역경승과 역경서를 출간했으며, 2~3만 명의 승려가 존재한 불교 융성의 시대였다. 따라서 선진문물에는 불교가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87년과 513년, 529년 각각 백제와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522년 신라와 결혼동맹을 맺었으나 529년 결렬돼 전쟁관계로 돌변한다. 532년 가락국을 통합한 신라가 대가야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지 친 백제 정책으로 전환했다. 554년에는 백제의 관산성 전투에 참전, 562년에 신라에 멸망한다. 이로보면 백제에서 대가야로 불교문화가 전파된 시기는 5세기 중 후반이나 530년에서 562년까지 일 것으로 추정된다. 관산성 전투 참전 시기는 고아동벽화고분의 조영시기와 비슷하다. 백제 성왕이 외교적 결속을 위해 불교문화를 공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고아동 벽화고분의 연화문이 불교와 관련이 없던 고구려 안악3호분의 것과 형식이나 형태가 비슷하지만 안라국 가까이서 고구려의 연가칠년명 금동불의 발견 등은 고구려를 통한 불교의 전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고구려의 5세기 초 대규모 남정의 결과와 관련된 것으로 본다.
또, 5세기 후반 남제와의 외교관계에서 불교문물이 전래된 경로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 백제와의 외교관계를 고려한 불교전래 가능성이 있으나 그 시기는 적어도 6세기로 대가야가 멸망하기 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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